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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Sep 30. 2023

#1 니 중국말 할 줄 아니

9월 마지막주 짧은 글


케이팝

영국 와서 많은 순간 케이팝 선배님들께 감사하고 있다. 2세대, 3세대 케이팝 선배님들이 계신 덕분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을 때 어색한 적막이 흐른다거나 불편한 대화가 이어질 필요가 없다. 비록 서양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케이팝이 주류 음악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동남아를 포함한 아시아권 학생들은 슈퍼주니어와 같은 2세대 아이돌부터 익히 듣고 자랐다. 일주일 동안 이렇게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3할은 케이팝 선배님들 덕분이다. 7할은 내가 중국어를 하기 때문이다.




중국어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중국인 친구들 틈에 섞여서 중국어만 해서 그런가 집 오는 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중국인 5명과 같이 밥을 먹었는데, 밥 먹을 때 만큼은 얘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안 듣고 밥 먹는데 집중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점은, 모국어는 멍 때리고 가만 있어도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들린다는 점이고 외국어는 주위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배경 음악과도 같다.


"나한테는 아까부터 중국어 수업이라 머리 아파."라고 했더니 애들이 막 웃었다. 내가 중국 유학을 온 건지, 영국 유학을 온 건지 헷갈렸는데 일석이조다.




니 중국말 할 줄 아니

(다소 큰 소리로 옆 친구에게) "뭐? 한국 학생이 있어?"

(손을 들며) "어. 그게 바로 나야."

(움찔하고 쳐다보며) "니 중국말 할 줄 아니?"

(태연하게) "응"


나 파고다 출신.


영화 '극한직업' 중



대학원 입학, 유교걸 졸업

한국에서 초중고 정규 교육을 받았는데 대학에서 콘돔이 한가득 든 박스를 보여주며 초콜렛이냐 딸기냐 고르라고 할 때 순간 속으로 움찔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옆사람은 자긴 엄마한테 이미 받았다고 했다. 흠칫하며 나가는 길에 파우치를 주길래 아무 생각 없이 받았는데 열어보니 한 20개가 들어있었다.




인연

11호 사는 중국인 한 친구가 '이렇게 만난 게 참 인연'이라는 말을 했는데, '인연'이라는 단어를 내가 중국어로 못 알아들어서 사전에 찾아서 들려줬다. 그러곤 파파고에서 나오는 발음대로 그 단어를 거듭 따라 하는데 갑자기 얘가 어디 가서 이걸 단어만 뱉으면 욕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음을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니 "그래? 그럼 다른 뜻은 뭔데?"라고 해서 말문이 막혔다. 영어로 한 단어가 떠오르는데 차마 뱉을 수가 없었다.




맞춰봐

한국에선 처음 만나면 나이 맞추기 게임을 하고 여긴 출신 국가 맞추기를 하는 것인가.

"나 어디서 왔는지 맞춰볼래? 오 이런 위험한 게임을 한다고. 한 번 맞춰봐."

뭔가 익숙하다.




김치보단 BTS

방금까지 BTS 얘기한 애가 김치가 뭐냐고 물었다.




우산

내가 현지인이 아니란 걸 알아챈다면 그건 우산 때문이다. 한국에선 예로부터 비 맞으면 대머리 된대. 누가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다 산성비랬어.




창작의 원천

영국에 오니 글쓰기 소재가 넘쳐 난다. 역시 창작을 하려면 밖에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냥 나가서 걷기만 한다고 아이디어가 샘솟지는 않을 거다. 뭐니뭐니해도 버라이어티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굳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술술 나온다. 떠오른 소재가 아까워서 저절로 메모장을 켠다. 자유롭게 터져 나올 수 있도록 이어폰도 일부러 뺀다. 같은 시야를 보고 같은 냄새를 맡았을텐데, 청각이 열리면 다른 감각도 같이 열리는 기분이 든다.




내 이름

어떻게 하면 '가연'을 '카야'로 듣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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