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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Oct 05. 2023

#2 한국말 나올 때

10월 첫째 주 짧은 글


방송국

한국에서는 MBC, SBS와 같은 방송국에서 내 노래가 나오는 것을 아직은 꿈도 못 꾼다고 생각했다. 라디오, TV와 같은 방송에 내 음악이 나오려면 음원 심의 등록을 해야 하는데, 8월에 발매한 신곡은 음원 심의도 넣지 않고 영국에 왔다. 그 말은 즉, 어떤 피디가 딱 '착해 빠진 게 아냐'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 라디오에서 틀고 싶어도 틀 수가 없다는 뜻이다.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들은 전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곡들이기에 그동안 음원 심의 신청을 하면서도 '나중에 하루아침에 갑자기 유명해졌는데 등록이 안 되어있으면 곤란하니까'라는 이유로 하였다.


그런데 지금 영국에 와서 첫 주차에 BBC 방송국에 내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등록했다. 한국처럼 단순히 심의 신청만 한 것이 아니라, 진짜 라디오에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검토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한 아티스트 당 30일에 2곡만 업로드가 가능하다. MBC도 꿈도 못 꿨는데 갑자기 꿈이 BBC가 되었다.





케이팝 파티

"나 한국인이야."라는 말을 참 자랑스러워하며 많이 한 밤이었다.





기차 파업

기차 파업으로 차편이 없어서 한 교수님이 수업에 못 오셨다고 한다.

우리나라 만세




비투비

"나는 아직 2세대, 3세대에 묶여있어. 요즘 그룹 잘 몰라."

"정말? 나도 그래. 혹시 비투비도 알아?"


서은광 님이 부릅니다.

아무도 모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Where are you from?"

"(중국어로) 나 한국인이야."

"I'm not Chinese."


"네가 오죽했으면"이라고 이해해 줬다. 지나고 생각하니 걔가 중국인이었으면 다른 중국인처럼 중국말로 말을 걸었겠지. 말레이시아인이 영어로 말 거는데 중국말을 해버렸네. 막상 물어봐줬는데 말이야.




뭐라카노

미국말도 친한 친구 피셜 남부 악센트를 쓰는데

영국말도 사우스햄튼에 살게 되어 남부 악센트를 갖게 되겠다.

한국말도 언젠가 부산에 살며 경상도 사투리가 생기면 재밌겠다.

그렇게 나는 모든 악센트가 섞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지...




한국인의 정

1. 한식당에서 부대찌개 한 입 먹고 울어서 떡볶이랑 김치 만두 받은 썰 풀어요.

저 별로 고생이랄 거 없이 하루하루 정말 재밌게 잘 지내는데 이게 아닌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2. 음대에 딱 한 명뿐인 한국인 동기가 감기약을 건네주자마자 운 썰 풀어요.

그렇게까지 막 아파서 서러웠던 거 아닌데 그냥 가끔 목이 좀 아프고 몸살끼 좀 있었을 뿐인데 너무 고마워요.




쿠팡이츠 
뭐가 제일 보고싶어?
쿠팡이츠
아니 뭐 가족이나 친구나...
쿠팡이츠
거기도 우버이츠 있지 않아?
쿠팡이츠




3대마요 

참치마요

치킨마요

내가 만든 간장계란밥도 맛 없는데 요리 하라고 하지마요




익숙해지고 있는 것

변덕스러운 날씨. 한 그릇에 2만 원인 김치찌개. 학교에서 학생들하고 영어보다 중국어로 더 많이 말하는 것. 이 수업에 아마도 나 빼고 전부 중국인인 것. 기차 타고 숲 속을 지날 때 핸드폰에 데이터 안 된다고 뜨는 사인. 버스가 제시간에 안 오는 것.

익숙해진 것

무단횡단




저녁 메뉴 고민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대충 쿠팡이츠 보고 시키면 20분 만에 덮밥이 문 앞에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랬다. 유학생도 한국인이다. 한국에선 아무거나 대충 입에 넣고 배부르면 그만이던 내가 점심때부터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재미있다. 삶이 더 재미있어졌다. 런던 한인 마트에서 처음 베지밀 두유를 발견하고 백팩 안에 고이 모셔와 집에서 딱 처음 맛봤을 때, 평소에 음료수 잘 먹지도 않았으면서 자판기에서나 봤을 '봉봉'을 한 입 딱 마셨을 때, 고기 중에서 불고기를 제일 안 좋아하면서 한식당에서 불고기 덮밥을 한 숟갈 먹었을 때 그 기쁨이 있었다.




한국말 나올 때

놀랐을 때

빡쳤을 때




버스

수업 1시간 전 출발했을 때 거의 30분 일찍 도착했는데

50분 전 출발하니 왜 아슬아슬한가.




펍 첫 경험

사우스햄튼 와서 오늘 처음으로 펍에 온 거라고 하니, 모든 펍이 이렇게 다 앱 다운 받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뻔했다. 맥주 하나 주문하려고 앱 다운 받고 가입하고 카드 등록하고 맥주 고르고 테이블 번호도 입력해야 하니 '차라리 사람도 없는데 그냥 가서 주문하는 게 훨씬 빠를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8시쯤 넘어가니 무지하게 바빠 보여서 앱 주문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바빠 보이는 직원 눈치 보며 카운터에 가서 서성이다 주문을 포기할 수 있는 내향인을 위해서라도 한국도 얼른 도입되면 좋겠다.




케이팝

"미안. 내가 한국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한정적이라. 케이팝 얘기하는 거 지겹지?"

"아니. 완전 환영이야.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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