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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DHD와 나

내 말투는 여행 중

by 이가연

캐나다인 친구를 만나니, 영국 발음이 쏙 들어갔다. 'better'도 '베러'라고 하는 내 모습을 봤다. 속으로 '뭐야 뭐야. 바뀐다. 바뀐다.' 했다. 물론 자주 입에 올렸던 performance, singer-songwriter, 그리고 당연하게도 water 같은 몇몇 단어는 확실하게 영국식으로 말한다. 내가 '워러'라고 한다면 영국 입국 금지 당해도 좋다. 그래도 영국인 친구와 말할 때와 너무 달랐다. 발음 유지율이 10%는 됐으려나.


예전에 "언니가 나보다 사투리 더 쓰는 거 같다."라는 말도 부산 사람으로부터 들어봤다. 평상시에 생각이 먹구름처럼 떠다니는데, 그게 영어일 때도 있고 사투리일 때도 있다. 어제 콜드플레이 콘서트 가서는 생각을 영어로 했다.


이것도 ADHD였다니. ADHD인은 주변 환경이나 사람의 말투, 분위기, 억양 등에 감각이 예민하고 잘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는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게 너무 심해져서 스스로 “내 말투는 뭐지” 같은 생각까지 들면 피로감이 클 수 있다는데, 그렇다. 진짜 피곤하다.


대신 언어 감각의 뛰어남으로 전환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잘 따라 하니까 영국에 고작 그 정도 살고도 영국 발음이 묻어나겠지. 남들 같으면 몇 년은 있어야 된다. 일본어, 중국어 발음도 좋다고 칭찬 많이 받았다. 내가 사투리와 서울말을 넘나들며 쓰든, 미국식과 영국식을 넘나들며 쓰든, 그 모든 게 내 고유의 억양이다. 그만큼 내가 가진 언어적 감각이 얼마나 유연한지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들도 그런 나를 재밌어하는 것 같다. 지금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걸지 몰라도, 의식적으로도 써보고 싶다. 자연스럽게 상대방 말투에 스며드는 것이, 어쩌면 사람 마음을 더 잘 열지도 모른다.


조금 피곤하긴 해도, 멋진 능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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