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 ADHD다. 백퍼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의해야 한단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사건에 그렇게라도 의미 부여를 해야 내가 상처를 뛰어넘을 수 있을 거 같아서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이다.
내가 뭔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기분이 나빠서 공격력 20의 말을 뱉었다 치자. 그랬는데 상대방이 공격력 30으로 받아치면 나는 곧바로 공격력 80 된다. 비유가 거시기하지만, 이럴 때 나의 상태는 생리할 때 굴 싸는 느낌과 비슷하다. 오늘도 이렇게 ADHD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공격력 20으로 말해서 상대방이 비록 기분이 좋진 않더라도 공격력 10 정도만 쳐도 내가 다음 대답이 비슷한 수준이지 80으로 뛰지 않는다. 그러나 그걸 나보다 더 공격력 높게 치는 사람들은, ADHD 같다.
내가 먼저 기분 나빠서 말한 건데, 상대방이 나한테 화난 것처럼 보이면 몇 초 안에 돌변한다. 가족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이라도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면, 내가 두고두고 두고두고 두고두고 잘근잘근 그 일을 곱씹어서 관계는 사실상 깨진 그릇 이어 붙이기다.
나는 어떤 관계든 ADHD 성향을 가진 사람과 대화가 잘 통하고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순히 성향을 가진 사람과 진짜 ADHD인 사람은 천지 차이다. 약간의 성향을 가진 경우는 흔하지만, 나처럼 진단 내려질 수준인 사람은 흔하지 않다.
'어떻게 내가 별 말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받아치지?'하고 느끼게 한 사람들은 어쩌면 나보다 심한 ADHD였을 수 있다. 물론 원래 인성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만일 내가 상처를 받았다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다. 상처를 받았다는 건, 그 일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데 발생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성의 문제였다면 내가 예측했을 것이다.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진짜 ADHD인이었을지, 성향이 있던 사람들인지,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상처 받을 일 좀 막고 싶다.
그 징후로 찾아낸 것은, TMI 남발이다. 방금 처음 만났는데, '저 말은 나한테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말 같은데. 하지 않는 게 좋은 말 같은데.' 싶은 게 있었는가. 나는 수년간 상담을 통해, 처음 만나자마자 깊은 얘기 털어놓는 버릇을 고치려 했다. 조금 나아졌다만 당연히 여전히 안 된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프라하에서 만난 사진사가 나를 매우 분노하게 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계속 화났었다. 영국 왔으니까 최대한 넘어가려고 노력했지, 한국이었으면 내가 폭주해서 반 죽었을 거다.
진작에 있던 ADHD 징후는, 나에게 자기 대표가 평소에 욕을 엄청 많이 한다고 막 실제 욕 예시까지 들면서 얘기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게 고객한테 하기엔 TMI였다. 하지만 나도 이게 지나고 나야 보이긴 할 거 같다. 그때그때 안다면 ADHD가 아니다.
그런데 나 ADHD는, 너무 열받아서 그 사진사의 상사인 대표와 통화하면서 그걸 다 말했다. 그랬더니 대표도 진짜 그렇게 말했냐며 목소리가 좀 차가워지셨다. 내가 ADHD가 아니었다면 그걸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대표가 욕도 많이 한다는데,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을까.
하지만 나는 매우 분노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렇게 남의 TMI를 하는 모습을 이미 보였으니 내가 그런 거라며 내 상황을 설명하기 바빴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걸 상사가 알면 한바탕 깨질 일 같다. 그래서 ADHD와 ADHD가 만나면 파국이 될 수도 있겠구나 깨달았다.
도저히 나로선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한 번 만나고 끝인 사람으로부터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감사할 일이다. 이미 친분이 맺어진 사람으로부터 그런 일을 겪는다면, 상처가 오래 간다.
이번 일로, 나랑 비슷한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걸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나처럼 열정 넘쳐서 에너지 레벨 높고, 자기주도적이고 자기 주관 뚜렷하고, 말 재밌게 잘하는 사람이, 순간 욱하고 말도 안 되는 말 뱉기 쉬울 가능성이 당연히 있을 거 같다. 유머 감각이란 게, 그 찰나에 뇌를 안 거치고 던졌을 때 웃긴 게 아니던가. 뭐든 양면성이 있다.
동족 발견, 반갑지만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