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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제작기 #13 거의 다 왔다

by 이가연

평생 ADHD로 살아왔다 보니 분명 남들을 이해시켜야 할 일이 많았을 거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묘사를 잘한다. 물론 이건 ADHD 특징이 아니라, 내가 언어 감각, 글쓰기 실력이 타고나서일 수도 있다. 특히 내가 느끼는 고통 묘사를 잘한다. '와 씨 이걸 어떻게 표현해'라고 생각했으면서 잘 표현하고 있다.

다른 곡 다 괜찮았는데, '있지' 이 곡은 달랐다. 이 곡 시작한 이후로 자려고 누웠는데도 갑자기 무슨 100미터 달리기 했듯 미친 듯이 심장이 뛰다가 괜찮고 그랬다. 편곡 완성하려면, '이거 파를 라 b로 바꿔주세요.'처럼 모니터링하고 수정을 계속해야 된다. 파일 받을 때마다 '열면 또 마음 찢어질 텐데' 싶었다.

올해 1월에 써서 그런가 보다. 다른 곡들은 그때 감정이랑 지금이랑 다르다. 이 곡은 여전하다. 그런 곡을 작업하는 건 정말 자해에 가깝다. 정말 다른 싱어송라이터들이 평생 한 번이라도 겪어봤을까.


그동안 곡을 쓰고, 유튜브에 올리는 건 나에게 치유였다. '역시 나는 5분 안에 이런 곡을 술술 잘 써.' 하는 자부심이 들었다.

과정은 어려웠지만, 이 작업도 결국 엄청난 보람을 안겨줄 거란 걸 안다. 무려 데뷔한 지 9년 만에 첫 미니 앨범이다. 올해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끝내 내가 엄청 행복해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지금까지 이번 타이틀곡과 같은 곡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밴드 편곡도 처음이고, 이 정도로 부르기 체력적으로 어려운 노래도 처음이다. 난 이 곡이 잘될 거라 믿는다.


음악적으로는 확신이 있는데, 내 마음도 그랬으면 좋겠다.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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