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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하고 일하기엔 힘들겠습니다

by 이가연

영국은 시간당 페이가 다 적혀있는데, 한국은 죄다 급여 협의라 적혀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음악 분야는 프리랜서라 그런지, 시간당 페이가 안 적혀있다. 그래서 한국 오기 전까지 이렇게 강사 페이가 낮은지 몰랐다. 내가 시간당 2만 원대 받으려고 영국에서 석사까지 받아왔겠나.


그래서 내가 가능한 최소 페이를 그냥 이력서 또는 메일에 적는다. '시간당 2만 원대 받을 바엔 계속 이렇게 살 거다. 절대 안 한다. 그냥 봉사 다닐 거다.'라고 할 수 있는 건 이 여의도 집과 음식 가득한 냉장고 덕이다. 의식주가 다 해결되니 가능한 마인드다. 영국이었으면 몇 파운드를 주든 닥치는 대로 다 해야 했을 거다. 원룸 월세가 230-250만 원인데요.


내가 분명 프리랜서라는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갑, 을 관계처럼 느껴지는 건 안 맞는다. 나에게 면접이란, 나도 상대방을 평가한다. 솔직히 면접 보는 사람이 내가 마음에 들었어도,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도 많을 거다.


왜냐하면 면접에서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은, 나의 최상의 모습이다. 분명 나와 일하게 되면, 나의 ADHD 증상의 모습도 드러날 텐데, 그걸 알지 않는 한 '장기' 계약서에 사인할 생각이 없다. 당연히 단기 계약에는 쓸데없이 말 안 한다.


지금까지는 진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상사가 일어났던 건 어쩔 수 없다.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은, 눈으로 확인이 된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뇌의 신경 발달 장애니까. 분명 나랑 대화를 하면 할수록, '왜 저런 말을 하지...'싶은 게 많을 거다. 이 글만 해도, 누가 읽을 줄 알고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씁니까.


면접 자리에 가도 나는 그냥 친구처럼 말한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딱딱하고 비즈니스적인 말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음악인이고 프리랜서이니 계속 이렇게 살 거다. 어차피 밝고 긍정적이고 에너지 있고 예의 있는 모습인데? 뭐가 더 필요하지? 나 매력적이잖아. 이런 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걸 알고 있다. 누군가에겐 요즘 세상에 저렇게 솔직하고 당찬 젊은 사람이 다 있냐 싶어서 '극호'다.


'우리가 너를 왜 뽑아야 되냐' 같은 공격적인 질문이나 '회식 같은 거 잘 참여할 수 있냐', '남자친구 있냐'는 전형적인 개떡 같은 한국인 질문도 해외 같으면 안 한다. 그런 거 들으면 ADHD라서 이미 얼굴 표정에 드러난다. 다른 면접자들처럼 태연하게 대처 못 한다. "네?" 하고 앉아있다. 불쾌한 티까지는 아니더라도, 당황한 티가 바로 난다. 그리고는 감정 인지 지연 증상 때문에 집에 오면 불쾌해한다. 집에 와서라도 '영국이면, 영어였으면 저 질문을 했을 때 무례한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영국이었으면 리포트하고 있었을 듯.


내가 같이 일하고 싶은 한국 사람은 나를 봤을 때, '아, 이 사람은 확실히 한국 하곤 잘 안 맞겠다.'하고 한 번에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아마 그 내가 싫어하는 한국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 있을 거다.


만약 운이 좋아 서로가 마음에 들었다면, 내가 말해야 할 건 두 가지다. 첫째, 나는 해야 할 말, 하지 않으면 좋을 말, 하면 안 되는 말을 구별해서 말할 수 없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고 뇌의 작용이라 못 막는다. 둘째, 나는 '눈치껏'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는 사고가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저렇게 안 해줬으면 좋겠다는 걸 직설적으로 말해줘야 된다.


저 두 가지를 말해도 여전히 나와 일하고 싶다면 나도 오케이다. 아, 한국에서 과연. 한국에서는 타로집을 차리든, 음악 교습소를 차리든, 내가 사업해야되지 않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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