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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저 사람도 ADHD

by 이가연

한국이 한국 했다
'중국인이 중국 했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한국인이 한국 했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나는 그런 생각 드는 순간이 매우 많다. 보통 전자는 중국인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였을 때 자주 쓰인다. 나는 주로 한국인이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은 말을 했을 때 생각한다.

저 사람도 ADHD
'저 사람도 백 프로 ADHD다.'라고 생각하니 분노가 조금은 내려갔던 경험이 있다. 하면 안 되는 말과 하지 않으면 좋을 말을 그냥 뱉는 것, 그래서 '10대도 아니고 저 나이 먹고 저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며 동족의 기운을 느꼈다. '맞다. 나도 저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가치관
친구고 애인이고 뭐고 나랑 대화가 되는 사람은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무슨 상관이냐.'라는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애인이 옷을 이상하게 입든, 세수도 안 하고 나왔든, 담배를 피우든 상관없다. 원래 나는 담배 피우면 친구도 안 뒀다. 하지만 정확히는 나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되는 거였다.

내 앞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아예 안 보이고, 한 번도 냄새 난 적도 없이 그냥 정말 어쩌다가 한 번 피는데 그걸 내가 통제할 권리는 없다. 이는 내가 그런 '남한테 피해 준 것도 없는데 지적하는 사람'을 가차 없이 전부 쳐내려 하기 때문에 확고해진 생각이기도 하다.

친구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마치 '달콤한 맛의 청소기'처럼 낯선 조합으로 느껴졌다. 나는 성인 된 이후로 영국에서 제일 안 외로웠다.

돈 절약
비쌀수록 좋을 거란 생각은 상당히 게으른 생각임을 깨달았다. 충분히 작년에도 미니 앨범을 낼 수 있었다. 이 정도 돈이 들 줄 알았더라면, 진작 작년 여름에 냈을 거다.

분노 조절
다음에 또 만나도 되지 않은 사람인가 : 화낼 필요가 없다. 뭔가 개선되어야 내가 다음에 만날 때 마음이 괜찮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굳이 힘 뺄 필요 없다. 내가 화가 난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어차피 저 사람이 계속 저렇게 살면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사람이 더 화내줄 거다. 남의 몫으로 두자.

다음에 '꼭' 또 만나야 하는 사람인가 :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 억지로 누군가를 또 만나야 하는 경우가 결코 없다. 그러니 분노보다는 그냥 적절히 화내는 게 더 낫다.

마트
이마트만 오면 영국 생각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그렇게 마트에서 장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끝나고 마트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장을 본다음에 무거운 가방을 이고 집에 가곤 했다. 일주일에 두 번은 고기를 구워 먹었고, 냉장고에는 항상 오렌지 주스, 치즈, 아이스크림 등이 있었다. 한국에선 아무리 독립을 하게 되더라도, 사랑스러운 쿠팡이츠와 마켓컬리와 함께라면 영국 살 때처럼 자주 마트에 가게 되진 않을 거다.


당연하지 않다
한 곡 제작하는 데는 원래 이 정도 드는 게 당연해서 그거보다 덜 들이면 퀄리티가 떨어지는 거 아니냐던 믿음이 버려졌다. 지금껏 싱글 한 곡 내던 비용보다도 덜 들여서 이번 미니 앨범을 완성했다. 때론 내가 당연하게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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