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졸업생이지만, 학생입니다

by 이가연

얼른 이 호텔 체크인하기를 기다렸다. 옮겨가는 호텔은 캐리어 끌고 걸어서 이동했다.


ADHD인들은 정말 감정을 육감으로 느끼는 거 같다. 호텔 문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 이거 작년 8월 냄새야.' 했다. 이 느낌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보문고 들어갈 때 그 향을 좋아하지만 그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분명 호텔 특유만의 향이 느껴졌는데, 묘한 찌릿함을 줬다. 작년 8월에 처음 왔었고 그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체크인했는지 알아서 그런다.

다른 근교 도시 갔다가 학교 가려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일어나니 피곤했다. 여행의 5-6일 차쯤 되면 슬슬 아침부터 피곤하고 가만있어도 발 아프다. 일주일 넘어가면 서서히 집 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내가 세운 여행 최대치는 2주다.

전부터 '여름에 즐겨야지'했던 '사우스햄튼 커먼'으로 갔다. 어린이대공원의 악 2.3배라고 한다. 집 앞에도 공원이 있고, 시내에도 공원이 넓어서 굳이 사우스햄튼 커먼까지 제대로 걸을 생각은 못 했다. 그런데 거기에 오리가 있는 연못이 있다고 하고, 워낙 전부터 추천을 받았던 터라 가봤다. 학교 옆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학교 다닐 적에도 몇 번 슬쩍 산책한 적은 있다. 하지만 구경을 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버스에서 내려서 곧장 지도에 연못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정말 오리들이 헤엄치고 놀고 있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역시 유명한 이유가 있다. 공원에 연못이 있는 게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구나 싶기도 했다. 역시 인간은 자연과 가까이 살아야 한다.


기다렸던 내가 다닌 학교 캠퍼스에 도착했다. 2시부터 5시 수업 청강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케스트라 어쩌구라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수업인지 안 알려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뭐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음악 수업이나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갔다.


일찍 가서 학생이 나밖에 없길래 무슨 수업이냐 물으니 '곡 만들기'라고 했다. 아코디언 연주하시길래 기본적인 거 알려주면 안 되냐 하니, 왼손 오른손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셨다.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니 진짜 유럽에 온 기분이 들었다. 유럽 길거리에선 아코디언 버스킹을 듣기 쉽지만, 한국은 상상이 잘 안 된다.


내가 학교 다닐 땐, 모든 수업에 중국인, 한국인 동기, 나 또는 전부 중국인과 나였다. 백인하고 같이 수업 중에 토론하고 대화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중국인 3명에 절반 이상이 백인이었다.


어제는 같이 노래 부르고 힐링하는 모임 분위기였다. 학교 정식 수업이 아니라서, 학교 학생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연령대도 다양했다. 이번 수업은 학교 수업 과목 중 하나인데, 학사생들이 함께했다. 그래서 인종이 다양하고 나보다 어려 보였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학사는 많이들 백인이었다.



강사는 스스로를 '커뮤니티 뮤지션'이라고 소개했다. 수업 주제는 커뮤니티 세팅에서 어떻게 단체로 같이 곡을 만들지였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들은 소리를 한 명씩 전부 말하게 했다. 그걸 다 칠판에 적은 뒤, 이 단어들을 2,3개 조합해서 가사를 한 줄 한 줄 만들었다. 그렇게 가사가 4줄 완성되면, 거기에 멜로디를 붙였다. 그러면 내가 말한 단어가 가사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다들 참여한 기분이 든다.

'Musical Tennis'도 배웠다. 흡사 ADHD 훈련 같았다. 예를 들어, 1 2 3 4 박자에 맞춰서 상대가 박수, 스냅을 치면 나는 남은 2 박자에 박수 2번을 친다. 상대가 박수, 박수, 스냅을 치면 나는 남은 1 박자에 박수 1번이다. 상대가 스냅 하나 치면, 바로 박수 3번인 셈이다.


그러다가 상대가 박수, 박수, 박수, 스냅으로 혼자 박자를 다 채우면, 서브가 넘어간다. 그런 식으로 서로 주고받아서 음악 테니스다. 집중력 게임이었다.



'노래를 만들면 뭐가 좋을까'라는 질문에 '기분이 좋아지지.'라는 대답이 생각난다. 나도 어떤 곡이든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이걸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있다. 음악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다 같이 음악을 만들면, 내가 참여해서 노래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에 즐겁고 흐뭇해질 거 같다.


'커뮤니티 뮤직'은 누구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바탕으로 한다. 학생들은 (가사에 욕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선생이 "No"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편하게 다 던질 수 있다.


만약에 멜로디를 막 던졌을 때 학생 중에 누군가가 이거 어딘가 들어본 멜로디 같더라도, "이건 달라. 이건 우리 노래야."라고 하라고 했다.


배운 점도 많고, 무엇보다 즐거운 수업이었다. 역시 나는 학교 수업 듣는 걸 참 좋아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좋아했던 게 학교 캠퍼스였다. 졸업생 신분으로도 학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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