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년 반이면 안 될까

by 이가연

수업 끝나고 교수 연구실에 따라가니, 남편하고 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다. 작년에 3살 딸이 있다고 얼핏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3살'이라는 나이라서 '얘 유치원생 같은데?'싶었다. 생각해 보니 그럼 올해는 4살이고 한국 나이로 치면 5-6살이니 유치원생이 맞다. 거기서 만날 줄은 몰랐기에 반갑고 귀여웠다.

얼마나 한국 살기 어려웠는지 간략하게 얘기하고 홍콩 알아보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냥 로컬 학교는 24시간 왓츠앱 켜놔야 하는 수 있다고 일하는 환경이 안 맞을 수 있으니 국제 학교로 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두바이를 강추하셨다. 더운 거 괜찮냐고 하시길래 한국도 여름이면 맨날 35도라도 하니까, 거긴 40도라고 했다. 교수도 원래 두바이도 가려고 생각했었는데, 남편이 너무 더워서 못 살겠다고 했다고 하셨다.

ADHD밍아웃도 했다. 친구한테 듣나, 교수한테 듣나, ADHD인이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해외 살아야 한다. 영국 살 때, 내가 장애인이면 한국 절대 안 돌아간다고 어떻게든 정착한다고 말했었다. 내가 그 말을 한 데엔 다 하늘의 뜻이 있었구나.

"너 여기 좋아하면서 또 살기는 싫잖아. 댓츠 쏘 ADHD."라고 하시는데 웃었다. 맞다. ADHD랑 애증은 진짜 친구인 거 같다.


만남이 끝나고는 이제 호텔 체크인하러 가는 길에 올랐다. 친구는 펍에 6시 45분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5시에 퇴근하고 바로 와줬다.

한국에 있다가 버스 타면 헷갈려서 자칫 내릴 데를 놓칠 수 있다. 여기서 Next Stop은 '이번에 내릴 정류장'이란 뜻이다. 한국은 '이번 정류장은, 다음 정류장은'이라고 말하지만 영국은 Next stop이라고 할 때 내려야 한다.



금요일 저녁이라 어딜 가도 사람이 없진 않았다. 여러 군데 들어가 보다 고른 펍도 너무 시끄러웠다. 시끄러운 펍은 우리 사랑스러운 ADHD인들은 매우 스트레스받고 당장 나가고 싶어 해서, 대충 치즈 감자튀김에 피자, 치킨 커리만 먹고 금방 나왔다. 다양하게도 먹었네.


그래서 친구와 늘 가던 조용한 펍이 있다. 거긴 희한하게도 항상 거의 우리 테이블 밖에 없던 곳이다. 그쪽을 향해 걸어가다가 중간에 그냥 멈춰서 발걸음을 돌렸다. 걔 생각이 너무 나서 여길 가는 게 맞나 싶어서. 이래서 좋아하는 식당, 펍 이런 데는 데리고 가는 게 아니었다. 연애를 하고서는 아파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이걸 몰랐네.

친구한테 왜 지금 남자친구 차단을 2년 만에 풀게 되었는지 디테일을 말해달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랬더니 친구가, 그냥 뭔가 좀 궁금했다고 뭐 하고 사나 인스타도 보곤 했다고 했다. 좋아. 혹시 2년이 아니라 1년 반은 아니었니.



배불리 먹은 뒤엔, 시티 센터로 영상 찍으러 갔다. 사우스햄튼 시내에서 단 한 번도 내가 나오도록 영상을 찍은 적이 없단 걸 깨닫고, 작정하고 원피스 입고 나온 거였다.

매일 글도 많이 쓰고 영상도 많이 찍는다는 점에서 거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비즈니스차 온 기분이다. 사진은 찍어도, 영상은 그만큼 찍는 습관이 안 들여있다. 이번엔 일단 많이 찍어두면 어떤 스타일의 영상이고 비행기에서 열심히 편집해야지 생각했다.

학교에선 혼자 카메라 들고 주절주절 학교 소개 영상을 찍었다. 시티 센터에서는 내가 나오도록 소개 영상을 찍었는데, 솔직히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여기저기 상점 들어가는 스타일도 아니고, 당연히 또 걔 말곤 할 말이 없었다. 저기서 롱패딩을 하나 샀는데 엄마가 무겁다고 버리는 게 좋겠다고 해서 버렸다가 몇 분 안 되어서 울면서 가지고 들어온 얘기 따위를 말하는 걸 찍었다. 음소거시키고 노래 영상에나 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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