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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나쁜 기억들

by 이가연

나쁜 기억들

마일리지 항공권을 얻어서 유류할증료만 내고 아주 저렴하게 항공권을 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국 직항이 아니라 파리와 프라하 직항이었기 때문에, 결국엔 내 돈이 더 나갔다. 프라하 2박 3일과, 파리 2박 3일 그 숙박비며 생활비가 있지 않은가. 둘 다 그렇게 가고 싶어서 간 도시가 아니었다. 항상 영국만 가고 싶었다.


파리와 프라하에서 스냅사진을 찍었는데, 프라하는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파리는 이미 찍어봤던 사진사라 좋을 줄 알았다. 웬걸, 그 두 번의 스냅사진 경험이 최악의 경험으로 남았다. 이번 여정에서 굉장한 오점이었다. 특히 프라하는 아예 도시 자체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역시 한국인은 이래서 안 된다는' 강한 분노로 번졌으며, 파리는 믿었던 사람인데 배신감이 컸다.


그러니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게, 얼마든지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지금

혼자 여행 엄청 잘 다니는 걸로 보일 테지만, 사실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나중에 누군가랑 같이 다니고 싶은 도시는 안 간다. 나는 프랑스나 이태리 남부가 가고 싶다. 마치 앨범 준비할 때, 저예산으로도 제작할 수 있을 악기가 별로 안 들어가는 곡부터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 지금 당장 가능한 것부터 한다.



연예인과 ADHD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 토크쇼를 보면 저기 중 누가 ADHD 성향이 있고 없는지 혼자 생각하는 게 재밌다. 관심사가 매우 다양하고, 그때그때 할 말 한다고 하고, 지난 일 계속 자다가도 생각나고,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이 있는 등 방금도 10분 만에 눈치챘다. 특히 예능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럴 수 밖에 없다. 툭툭 던지는 말이 웃기니까 자꾸 예능에 나오는 건데, ADHD인이 그렇게 두 번 생각 안 하고 말을 잘 던지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ADHD인이 끌릴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 다른 직군에 비해 비율이 높을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만능 엔터테이너, 이것저것 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된다.


그 밖에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은 다음과 같다.

- 도대체 저 사람은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호기심이 가는 사람

- 뭔가 좀 특이해서 연예인 안 했으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기 어려웠을 거 같은 사람



ADHD와 사람

주변 사람들이 떠난 이유는, 단순히 안 맞아서가 아니라 상대들이 내 ADHD 증상을 못 견뎌서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가 그랬다. 그래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지금이라도 그들이 이걸 안다면, 나에게 일말의 연민이라도 갖게 될까.


그래서 이젠 셋 중 하나다. 본인이 ADHD 성향이 있거나, 주변에 이미 ADHD인이 있어서 익숙하거나, 아니면 나의 글과 설명을 토대로 ADHD인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정리하고 있다.



충동 항공권

아무리 생각해도 나 ADHD는, 통장에 2백만 원이 있는 한 영국 가는 항공권을 언제든지 끊을 거 같다. 정 안 되면 친구 집 소파에서 자면 되기 때문이다. 올해 9월이나 10월 정도는 미리 끊어놔야, 한국에서 여름 나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창작

인터넷에서 누가 좀 악동뮤지션 이찬혁을 대차게 차 줘서 명곡이 나오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길 본 적이 있다. 무슨 그런 재입대 같은 소릴 하고 있나.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창작을 가공할 때 겪는 고통을 몰라서 그런다. 사람마다 각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을 텐데, 그때 에피소드를 눈앞에 영상으로 수백 번 시청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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