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최최최최최최상
내가 분노했을 때, 그걸 동요하지 않고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 상에 오빠랑 영국인 친구 둘 뿐이다. 사실상 그게 내가 영국 가고싶어하던 이유의 80%다. 한국 국적이 그게 가능하다고요? 기대도 안 한다.
아니, 한다. 그래서 쓰는 글이다. 그래도 사람들도 몰라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쓴다.
1. 지금 즉시
내가 분노했을 때는, 불 난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불이 왜 난 건지 말할 시간 없다. 일단 당장 꺼야 된다. 이 분노를 처음 본 사람은, 불 난 걸 처음 본 사람처럼, 갑자기 너무 당황스럽고 당연히 처음 봐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불이면 일단 소화기로 끄려는 시도를 해야하고, 큰 불이면 대피하며 119를 불러야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불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크지 않다.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실제 감정보다 텍스트가 몇십배로 더 공격적이다. 당장 만날 수 없다면 전화라도 반드시 해야한다. 카톡으로 갑자기 막 폭주하기 시작했다면, 아무리 바빠도 그냥 지금 당장 2분만 전화해주면 사건 종료될 수도 있다. 그 기다림이, 불과 같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은 아무리 급똥이 마려워도 집에 불 났으면 그거부터 끈다.
가족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인간 관계 갈등이 아니다. 불이다. 처음엔 내가 하는 말이 그냥 짜증, 불만 폭로 수준으로 보일 수 있다. 불이다. 집을 완전 홀라당 다 삼키는 불처럼 나를 다신 못 보게 되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쉽다.
2. 도저히 감당 안 될 때라도, 한 문장이면 된다
상대를 완전 말로 죽여놓을 수도 있고, 분노가 50% 이상 깎일 수도 있다. 저 두 친구는 유일하게 50% 이상 깎던 친구들이다. 영국 국적들만이 유일했다.
"지금은 대화하기 어려울 거 같으니 잠깐 쉬자."고 얘기해라. 이걸 말 안하고 카톡에 1 사라지는 순간 완전 더 폭발한다. 상대방이 지금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런 걸 안다.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는 거 정말 너무 잘 안다.
이게 안 되니까 장애라는 걸 이해해달라. 반드시 직접적으로 말해줘야 한다. "지금 내가 너의 말을 듣고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어려우니 나중에 얘기하자." 라고 전화로 말하면 더욱 좋다. 안 되면 채팅으로 정확히 저 워딩을 쳐주면 좋겠다. 아직 이거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ADHD는 거절에 백배 이상 민감하다. 머리로 알아도 거절당했다는 느낌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저 한 문장이면, 적어도 분노가 더 커지지는 않을 거 같다.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될 듯 싶다.
3. 지금 모습이 중요
5분 전까지 텍스트로 욕하던 사람이, 만났는데 아무렇지 않아할 수 있다. 감정 변화가 비ADHD인은 이해할 수 없다. 지금 모습만 보면 된다. 지금만이 중요하다. 아까 화냈더라도, 지금 괜찮아보이면 된 거다. 물론 그러다가 갑자기 또 화낼 수는 있는데 그럼 또 그때 그게 진짜다....... 내가 생각해도 디게 어렵네.
성인 이후로 1년 이상 안정적으로 친한 관계를 맺어본 한국인이 없다는 건, 이 탓이 99%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본인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중인격과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그래놓은 건 아는데, 내가 그런 게 아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공격한 것만 기억 난다. 나는 내 의지로 한 게 아니고, 병인데, 상대방은 ADHD가 아니니까 의지로 그런 거 아닌가. 본인이 뱉은 말이 다 자유의지에 의해, 다 나중에도 기억하는 거 아닌가. (물론 훗날에 저 사람도 ADHD라 그랬구나 싶으면 나도 상대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
그래서 분노 상황에서 단 한 번이라도 나를 공격하면 돌이킬 수 없다.
가장 훌륭한 치트키는 당장 만나서 먹을 걸 먹이는 것이다... ADHD는 사고 전환에 어려움이 있다... 전환만 되면 화 내던 거 까먹는다... (그게 별 일이 아니었다면)
끝으로 영국 국적의 유일하게 한국말로 나를 진정시킨 능력자의 말을 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