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ADHD의 즉각 감정 표현과 사회적 눈치 부족에 대한 설명서다.
1. 하나하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않기
오빠는 내가 하는 말 80%는 걸러듣는다고 했다. 그게 대충 듣는다는 뜻이 아니란 걸 안다.
오빠와 영국인 친구는 유일하게 내가 그냥 그때그때 감정을 표현하는 거란 걸 알아주는 사람이다. 이걸 진지하게 다 받아들이면, 내가 아주 이랬다저랬다하는 이상한 인간으로 보인다. 오빠처럼 훌륭한 사람은 그 중에 어떤 말이 본심인지를 안다.
2. 친한 사람 나뉘는 기준
나에겐 친한 사람 나뉘는 기준은, 상대방이 문자 확인을 하지 않았는데 몇 개나 남겨둘 수 있는지 같다. 오빠와 영국인 친구는 무제한이다. 보통 '친하다'고 말하면 열 개 정도다. 열개가 스무개가 되지 못하는 건, 저 두 명 제외하면 그 정도 안전함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오빠는 그동안 무수히 많이, 내가 그렇게 남기는 말들을 읽으면 얼마나 흐뭇한지, 즐거운지,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얘기해줬다.
ADHD인은 하루에도 수천가지 생각이 뇌를 스치는데, 그게 스칠 때 공유하고싶다는 건 그만큼 친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 아닌가. 오빠 말대로 상대방들도 고마운 일이다. 아무한테나 그러는 게 아니지 않나. 게다가 나 같이 인간이 징글징글하고 상처 많은 사람이 마음을 열고 사람을 믿은 거다.
오빠만 그렇게 말한다는게,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혹자는 그런... 거는.. 애인이나 가능한 거 아니냐고 한다. 그런 말 들으면 역시 한국인이니 저런 소리가 나오는구나 싶다.
슬프게도 오빠 존재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기대했다. 분명 친하다고 생각해서 남긴 건데, 친해졌다고 판단했으니 조잘조잘한건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고 얼마나 무서웠는줄 아냐는 말도 들어봤다. 그래서 똑바로 말해줘야 된다. 그렇게 갑자기 폭발해버리면 너무 큰 상처로 남는다.
그러니 나에게 오빠처럼 내가 하는 말들이 얼마나 재미있고 배움이 되는지 자꾸 말해준다면 내가 안심하고 친해질 수 있다. 안심을 많이 시켜줄 수록 엄청나게 끈끈한 관계가 된다. 다만, 그 속도가, 그 정도가 어느 순간 부담이 된다면 그 또한 즉각 알려줘야 한다.
3. 절대로 돌려서 거절하지 않기
예를 들어, 내가 연락 오는 거 자체가 싫은 건데, 이번주에 바빠서, 이번달에 바빠서, 라고 하면 나는 다음주와 다음달에 연락한다.
만나자고 열 번 이상 거절당한 사람도 많았다. 이제와 생각하면 서로 참 힘들었겠다 싶지만, 그게 그 상황에선 안 된다. 사람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 돌려서 거절이라는 의심이 되지 않는다. 사실 아직도 의문이다. (이래서 실제로 ADHD가 사이비 종교, 사기 이런 거 피해자 되기 쉽다고 한다.)
과거 브런치 글에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와 같이 이에 대한 글을 자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땐 나도 이게 내 의지로 바뀔 수 있는 줄 알았다. 안 된다.
안읽씹/읽씹 하면 알아듣겠지. > 모른다. 말해라.
단답하면 싫은 티 나겠지. > 모른다. 말해라.
이 쯤 되면 알아듣겠지. > 알아들었다고 할 때까지 말해라.
작년 8월 내가 영국에 다시 왔다고 했을 때, 걔가 다시 한 번 더 꺼지라고 했다면. 이번 앨범이 탄생하지 않았다. 정말 절대로 바뀌지 않고 내가 싫다면, 내가 한국에서 날아왔든, 남아메리카에서 날아왔든 그렇게 말해주는 게 나를 위한 길이었다.
작년 2월 이후로 한 마디도 못 들었다. 반응이 없으면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했겠지... 대답이 없는 한 그냥 계속, 나에게 심하게 말했던 순간은 '걔도 ADHD인 거 같다'하고 이해가 되고, 여전히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일 거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다. 다른 누구의 말도 들을 생각이 없다. (사실 이건.. ADHD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