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대 지금 / 스리체어스
p12 이제 정보는 값이 쌉니다. 비싼 것은 취향과 관점입니다. 바로 에디토리얼입니다. 에디토리얼 라이팅은 작가의 고유한 취향과 관점으로 정보를 선별하고 재배치해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일입니다.
- 새로 기획하고 있는 '런던 말고 영국'도 영국 남부 도시에 대한 나의 취향과 경험을 소개하는 일이다. 내가 사우스햄튼 도시의 탄생 배경과 역사를 쓰고 있는 건 생각만 해도 이상하다. 그 책을 쓰게 된다면, 각각의 도시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수집해서 정리하겠지만, 중요한 건, 그리고 사람들이 궁금한 건, '내가 그 도시를 어떻게 느꼈는지'이다.
p19 에디토리얼 라이팅의 작가에게 그 목적은 독자의 문제 해결이어야 합니다. (중략) 독자의 페인 포인트가 심각하고, 그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대형 기획이 됩니다.
- 내 영국 책은 아무래도 '왜 영국에서 대학원 다닌 사람의 책은 없는 거야. 음대 유학한 사람의 책은 없는 거야. 영국 가는 게 맞나. 가서 잘 하고 올 수 있을까. 뭘 얻어올 수 있을까.'의 고민을 가진 독자에게 가장 도움이 될 거다. 그게 내가 겪은 문제라서 썼으니까.
2023년 8월의 나는, 만일 그게 남의 책이었다면 읽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방금 이 생각을 하니 정신적으로 전율이 일었다. 유학 갔다 오면 책을 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런 내용들이 담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p22 내 기획을 엘리베이터를 타는 짧은 시간(elevator pitch) 동안 상대에게 설득할 수 없다면 좋은 기획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 인디 가수로 살아남기 :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 대학생이 앨범을 발매 및 홍보하고 공연하며 겪은 일을 엮은 책 (조금 더 실용적인 에세이로 개정판 출간 예정)
- 영국에서 찾은 삶의 멜로디 : 음악 전공 영국 대학원생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며 성장한 이야기 (조금 더 자기 계발적 요소가 있는 에세이)
p53 "책을 쓰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강연을 하신다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목차 구성은 강의 슬라이드를 만드는 것하고 거의 같습니다."
- 학교에 실용음악과 강의를 다닐 때 파워포인트를 떠올려보면, 내 소개 한 장, 목차 한 장, 그다음에 바로 실용음악과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오지 않는다. 먼저 실용음악과가 뭐 하는 곳인지, 즉 어떤 전공이 있는지 소개한다. (나는 살면서 실용음악과라는 말만 들어도 "노래 잘하겠네" 하는 걸 수백 번 들었다. 실용음악과에는 드럼, 베이스, 기타, 건반, 작곡 등 전공이 있으니 다짜고짜 노래 잘하겠네 하면 무지함이 울려 퍼진다.) 이번 책에서도, 먼저 영국 남부가 어떻게 나뉘는지부터 쓸 예정이다.
p72 저는 제가 아는 독자를 떠올리며 책과 피처 기사를 만듭니다. 데이터로 존재하는 30대 초반 독자는 분석의 대상이지만, 얼굴과 이름을 아는 독자는 공감의 대상입니다. 작가를 더 잘 쓰게 합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쓴 연애편지에 감동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에게 써야 합니다.
- 만약 '대중적인 밴드, 발라드를 좋아하는 20대 후반 남자'를 타겟팅해서 곡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한 마디도 안 나왔을 것이다. 대학원 다닐 때, 데모그래픽과 사이코그래픽의 중요성을 배웠고, 유튜브만 봐도 내 채널을 보는 시청자의 성별, 지역, 나이대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창작과 활동에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 나는 대상이 있어야 '더 잘'도 아니고, '쓴다'. 예를 들어, 며칠 전에 여수에서 쓴 '마산 밤바다' 곡만 해도, 그냥 '밤바다 걷는 기분을 담아서 곡을 써보자' 했으면 전혀 못 썼다. '내가 지금 여수 와서도 마산 생각하는 게 웃기니까 지금 이 파도가 심장을 철썩철썩하는 기분을 담아서 이 노래도 걔한테 닿게 하자.'싶으니 녹음기 켜고 술술 나왔다.
p201 1차, 2차, 3차 퇴고는 목적이 다릅니다. 1차 퇴고에서는 큰 그림을 봅니다.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은 없는지, 각 장과 절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살핍니다.
- 아 그런 거였나요. 그것도 모르고 1차, 2차, 3차, 4차, n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보려고 하니 미치던 거였군요. ADHD는 특히 이 '주제에 벗어난 내용은 없는지' 너무 중요합니다. (말하듯이 글쓰기 = 산만함 = ADHD 티 남)
p222 내가 읽고 싶은 걸 써야 합니다. 나를 첫 독자로 삼아 내가 즐거워지는 걸 쓰는 겁니다. 그 결과물이 가까운 친구에게 권할 만한 것이고, 기왕이면 사회에도 이로운 것일수록 더 좋습니다.
- 내가 지금 가장 쓰고 싶은 글을 무엇인가. 음... 언제는 ADHD 책 낸다고 하고, 지금은 영국 도시 책 낸다고 하니까 그냥 그때그때 내가 즐거운 걸 쓰면 된다. 그렇게 글이 모이면 언젠가는 두 권이 나오겠지.
나는 즐겁지 않지만 남을 즐겁게 하려고 쓰는 글은 거의 모두 실패합니다. 지금 당장 쓰고 싶어서 계단을 두어 개씩 뛰어오르게 하는 것을 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