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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Nov 08. 2023

공대생들


예대 나와서 공대생은 처음이다. 이들은 신경 쓴 게, 미안했던 게, 부끄러웠던 게 무안할 정도로 아무런 신경도 안 쓴다. 이제는 그래서 '아무 생각 없다. 쟨 아무 생각 없다.' 미리 주문을 외운다. 그때 한 말이 그 뜻이 아니라 이런 뜻이었다고 바로잡아도, 그 행동은 이래서 그랬다고 얘기해도,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반나절을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그동안 주변에 꼭 나 같은 예민한 예술가들만 있어봤나 보다. 나 같지 않아서 신기하고 재밌다. 가끔은 슈퍼 컴퓨터에 넣고 돌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즐겁다. 때론 부럽다. 나도 저렇게 타인에 크게 관심 없고 대화가 끝나면 그것을 더 이상 곱씹지 않고 일상을 단순하게 살면 불안과 걱정의 노예로 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예술가는 못 된다. 나는 사랑, 감동, 슬픔, 애증, 서러움, 후회와 같은 감정을 깊이 있게 느낄 줄 알고 이를 글과 음악으로 표현할 줄도 안다.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받고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일상 속 많은 것이 나에게 영감과 기쁨이 된다. 또한 더 쉽게 아파하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을 하고 나아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


일상 대화 중에도 그때그때 메모하며 영감이 떠오르면 좀처럼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아마 본인들은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싶은 말들도 많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예술을 만들어내기도, 불면을 유도하기도 한다. 내가 했던 말이나 상대가 했던 말을 계속 곱씹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면 이럴 것 같아서 고민하다 말해도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나의 다채로운 감정 표현에 이 공대생 친구는 내 인생이 심심하진 않을 거 같다, 내가 말하는 것이 꼭 뮤지컬 보는 것만 같다고 했다. 맞다. 지루함은 나의 적이다. 평범함 또한 숙적이다.


덧붙여 경상도 공대생들이라서 더 가관이다. 무슨 일이든 덤덤한 것이, 얘기하다 보면 나도 같이 틱틱대고 말투가 세지는 것만 같다. 이미 벌써 명예 경상도인이다.


가끔은 이들과 나와 너무 달라서 우스갯소리로 '전생에 공대에 불 질렀나 보다'할 때도 있지만 참 재밌다. 어쩌다가 내가 공대생만 세 명과 어울려 술을 먹고 있는지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던 신기한 조합이다.


오빠한테 전화하면서 첫마디가 "야"로 시작할 수도, 친구랑 통화하면서 웃다가 울다가 욕하다가 다시 웃기를 반복할 수도 있던 건 그만큼 정서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앞으로 같이 어울려 지내는 일상이 더 기대가 된다. 한 가지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내가 혼자 생각이 많아져서 '아무 생각 없을 거다'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답장을 빨리 해줬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는 이런 글을 올려도 되나 괜히 신경이 쓰이지만 '그런가 보다' 할 것을 이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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