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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한국인 아닐 걸요?

by 이가연

한국인 아닐 걸요?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이 뭔지 모른다.

나는 김치 없이 살 수 있다.

나는 보는 사람만 없으면 떡볶이 물에 씻어 먹고 싶다.



타이핑

왜 손으로 글은 잘 안 쓰는지 깨달았다. 손 글씨 속도가 내 머리 회전 속도를 전혀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방금도 노트 좀 꾸준히 써보려다가 때려치웠다.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쓰는 노트는, 타로 노트다. 문장이 아니라 단어만 나열해서 적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핸드폰으로 카톡 치거나 글쓰기도 답답하다. 핸드폰으로 쓰면 오타가 잘 나서 자꾸 고쳐야 된다. 그래서 오빠나 제이드처럼 친하면 음성 메시지 기능을 잘 이용한다.



ADHD가 똑같은 말을 자꾸 하는 이유

하루에 떠오르는 생각의 가짓수가 다르다. 그러니 그 많은 걸 다 말하고 살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삼키게 된다. 그러니 내가 이 말을 하려다가 말았는지, 실제로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과거의 사건들이 수백 번씩 떠오른다. 이건 약도 먹어봤는데, 별 효과는 못 본 거 같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 어떤 생각이 떠올라도 눈치 보지 않고 다 말할 수 있는 상담사 같은 오빠가 한 명 있다.


내 뇌는 그런 슬픈 생각들로부터 행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매 초마다 노력을 해야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차였을 때 정신이 없어서 핸드폰을 떨어트리든, 걸어가다 넘어지든, 차가 오는데 못 보고 부딪힐 뻔하든, 불상사가 생길 수 있지 않은가. 비 ADHD인은 그게 일시적이라면, 나는 항상 제정신을 차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신경이 곤두서있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지금 무슨 말하고 있었지? 이 말했나?'의 구렁에서 산다. 그러니 얘가 왜 자꾸 같은 말을 할까 생각이 든다면, 얘 뇌에서는 맨날 전쟁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이해해 주길.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나이가 드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사회에 찌들어서 눈빛이 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싫다. (쓸데없는 걱정 같다만) 한국 사회에서 지금 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할 의향이 매우 있다.



여행

나는 여행을 잘하고 싶다. 여행도 자꾸 하면 는다. 이제 내가 자주 앉아서 쉬어야 한다는 것, 아침에 나갔다가 점심에 호텔 들어와서 쉬고 저녁에 다시 나가야 한다는 것, 유럽은 특별히 보고 싶은 게 있지 않으면 영국 말고 다른 나라는 별 감흥이 없다는 것, 워크숍에 참여한다든가 뭔가 의미가 있어야 다녀온 보람이 있다는 등 나만의 팁을 깨우쳤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힌다. 사진과 영상은 남아도, 어차피 잘 안 들여다보게 된다. 새로운 사진과 영상은 계속 찍기 때문이다. 반면 글을 쓰면 가슴에 남는다. 더욱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그만큼 스쳐 지나가게 둘 수 있는 부정적인 경험은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줄 없는 노트를 챙겨서 그림을 그리면서 다녀야겠다. 발 아파서 벤치에 앉아 쉬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잘 못 그리더라도 주변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면 기억에 좋게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앉아서 핸드폰 하는 건 좀 아깝다. 그림을 그리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그 순간을 사진처럼 가슴에 저장할 수 있다.



영국 친구

영국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저렴한 걸 발견할 때면 영국인 친구에게 말하는 재미가 있다. 한국은 서울만 아니면 5성급 호텔이 10만 원대에도 가능하다니. 영국은 시골 같은 도시도 3성급에 12만 원 했다. 택시 13분 타는데 4파운드 (약 7천 원) 나왔다고 자랑도 했다. 영국은 그 4-5배쯤 한다.


한국에 한 번 오기만 하면, 매년 오고 싶게 만들 자신 있다. 영국인이 뭐에 놀라고, 뭘 좋아할지 안다. 영국에 없는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 밤인데도 대낮 같이 반짝반짝한 번화가, 친구가 살아온 도시에는 찾아볼 수 없는 코인 노래방까지, 보여줄 생각만 해도 설렌다. 분명 저번에 내가 "나.. 아무래도 영국 이렇게 자주는 못 올 거 같아.."라고 하자 친구가 그럼 본인이 일 년에 한 번 한국 오고, 나도 한번 영국 가면 되겠다고 했었다.


친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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