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by 이가연

이것은 영국 South East (남동쪽) 지도다. 나는 Hampshire에 있는 Southampton에 살았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freeworldmaps.net/europe/united-kingdom/southeastengland/



*지난 책 '영국에서 찾은 삶의 멜로디'에서부터 올바른 표기인 '사우샘프턴'이 아닌 '사우스햄튼'을 고집하고 있다. (그건 'Hermione'를 '헤르미온느'라고 쓰는 기분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아마 관광 목적으로 사우스햄튼에 가볼 일은 잘 없을 것이다. 이유 없이 찾을 만한 도시가 아니다. 축구 경기를 한다면 모를까. 볼 게 없다. 축구에 관심이 있지 않는 한 도시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많다. (나 포함)


내가 살았던 도시를 홍보해야 하는데, 사우스햄튼 미안하다. 아니, 미안하지 않다. 조금만 더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췄더라면, 그 도시에 사는 동안 그토록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다른 도시를 많이 다녔다. 그 점은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사우스햄튼을 찾는다면, 가장 유력한 이유는 배를 타기 위함이 아닐까. 사우스햄튼에서 배 타고 1시간이면 아일 오브 와이트라는 섬에 도착한다. 한국 사람들이 제주도 가듯, 아일 오브 와이트에 도착하면 딱 휴양지 느낌이 난다. 대중교통이 안 다녀서, 차 없이는 종일 택시를 타야 하기 때문에 택시비가 많이 나온다. 심지어 데이터도 잘 안 터진다. 영국에서 제일 데이터가 터지지 않은 도시 1위가 아일 오브 와이트, 2위가 옥스퍼드였다. (추후 '아일 오브 와이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유학 가기 전, '사우스햄튼은 타이태닉호가 출발했던 도시다.'라는 사실만 또렷이 알았다. 안타깝게도, 몇 달 있다 온 지금도 머리에 남는 건 그거 하나다. 그 밖에는 '제인 오스틴이 잠깐 살았었다'도 있는데, 이게 떠오른 이유는 제인 오스틴이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사우스햄튼 도시에서 이곳저곳에서 축하 행사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유명해지면 사우스햄튼 도시 측에서도 내가 사우스햄튼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2025년 현재까지 동문 중에 아직 모두가 알만한 가수가 없다. 그게 내가 되고 말 테다.


내가 만일 죽는다면 (갑자기 이런 얘기 뜬금없지만), 사우스햄튼 메이플라워 파크 앞에 벤치를 세워주면 좋겠다. 종종 그 공원 벤치에서 바닷바람을 (대부분 춥다고) 느끼며, 테이크아웃한 아이스 밀크티를 마시며, 갈매기와 비둘기들이 한데 섞인 모습과 배가 출항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특히 해 질 무렵 노을이 예뻤다.


벤치에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세상을 살다 간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추모 방식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아마 그 사람들도 이 공원을 무척 좋아했기에 유가족들이 세워둔 것이 아닐까. 한국에는 내가 그렇게 아끼는 공원이나 장소가 없다. 아직 벤치 몇 개를 더 둘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거 봤다. 사우스햄튼 도시 전체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짙게 물들어있는 장소다.


마치 '옛날 아주 옛날에, 이가연은 사우스햄튼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학교 결정을 뒤집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건 이가연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되죠.'라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듯싶다. 얼떨결에 학교를 바꿔 가게 된 그 도시는, 영국을 향한 애증의 출발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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