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산 책의 90% 이상은 워터스톤즈에서 샀다. 교보문고 같은 프랜차이즈 서점이다. 새로운 도시를 갈 때면, 워터스톤즈가 있는지 확인하고 먼저 지도에 체크해주곤 했다. 그리곤 워터스톤즈가 없는 도시면 '도시가 아니고 마을이군' 생각했다.
영풍문고도 있지만 교보문고라고 한 이유는, 중학생 때부터 강남 교보문고는 나의 아지트였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문을 들어설 때부터 나는 향도 좋았다. 그래서 영국에도 교보문고 향을 가져갔다. 향수 같은 건 집에 있는 아무거나 뿌리면 되어서 돈을 쓸 일이 없으니, 유일하게 내 돈 주고 사본 향이다. 문득 워터스톤즈 디퓨저도 있다면 내 방을 영국으로 만들고 좋을 거 같은데, 그냥 서점 냄새일지 모르겠다.
5월에 영국 갔을 때도, 개트윅 공항에 내려서 이스트본 역에 도착한 뒤, 호텔로 걸어가면서 워터스톤즈 한 군데 들렸다. 캐리어를 끈 채로 책 3권을 산 뒤에, 호텔 체크인을 했다. 딱 그때부터 산 책의 앞면에 언제 어디서 샀는지 적어두는 습관을 들였다. 다음날 브라이튼에 가서도 워터스톤즈에서 한 2시간 정도 책을 봤다. 어느 도시를 가든 있으면 필수로 들린다.
런던 갈 때마다 코벤트 가든 & 소호 부근에 간다. 거기엔 워터스톤즈가 도보 15분 거리마다 하나씩 있는 느낌이다. 보통은 하나나 두 층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긴 무슨 백화점 같은 층수의 워터스톤즈가 있다. 0층은 소설이라 패스하고 바로 내부 엘레베이터를 탄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개방형이고,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자리도 있어 좋다. 반면 영수증 있어야 화장실 비밀번호를 알 수 있다는 곳도 런던 어딘가에서 봤다. 화장실 가지고 힘들게 굴 때면 영국이 참 정 떨어진다.
위 사진처럼 거긴 원래보다 음악 서적이 3배 이상 많아서 좋았다. 중학생 때부터 한국 교보문고를 가면, 실용음악 서적이 터무니없이 적게 느껴졌다. 음악 코너는 에세이 같은 코너와 다르게 매번 신간이 뭐가 나오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저런 곳은 음악 책 천국 같았다. 영어는 전세계적으로 출판이 되니, 서적 수가 차원이 다르단 걸 느꼈다. 음악 기준으로 결코 비교 불가다. 아마 다른 분야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 작년에 음악 전문 출판사와도 미팅을 해보았지만, 한국은 '발성 잘하는 법', '화성학 독학하기'같은 이론 서적이 대부분일 뿐이다. 위 사진에 보면 책장에 'Music by artist / group'라고 되어 있는데, 한국은 음악가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 책이라면 BTS 아니면 임영웅, 초대형 팬덤을 겨냥한 책 몇 권뿐이다.
사우스햄튼 워터스톤즈는, 도시 내 유일한 쇼핑몰인 웨스트키 1층 문 입구에 바로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걔를 만날 때 워터스톤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걔랑 그렇게 된 이후로, 워터스톤즈까지는 그나마 돌아다녔다. 그 앞에서 만나기만 하고 서점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었다. 그 도시 살 때, 소위 걔와의 기억이 묻지 않은 장소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문 앞에서 만난 거 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도 무시해야 했다. 문득 같이 서점도 구경했으면 좋았겠다 싶으면서도, 그랬으면 몇 달을 너무 괴로웠다. 하늘이 그래도 서점은 자유롭게 주셨다.
들어가면 먼저 여행과 음악 서적을 구경했다. 그러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타로, 점성학과 같은 Spirit 서적과 심리학, 취미 서적을 봤다. 옆에 서점 내부에는 카페도 있다. (그리고 그 아무데도 데이터가 안 터졌다.)
책이 읽고 싶다면 학교 도서관도 있었지만, 학교 도서관은 실용음악보다 너무 클래식 위주였다. 게다가 2012년 책이면 거의 가장 최신이었다. 예를 들어, 뮤직 비즈니스 홍보와 마케팅에 대한 책인데, 이제 막 페이스북 얘기하고 있으면 공감이 되겠는가. 뮤직 비즈니스는 2010년대 초반과 중반도 하늘과 땅 차이일텐데 마음에 드는 책이 별로 없었다. 심각하게 책들이 다 낡았었다.
밀크티 전문점 '차타임'은 프랜차이즈더라도 딱 사우스햄튼 지점만 아지트 삼아 좋아했다면, 워터스톤즈는 도시마다 방문하는 걸 좋아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번 9월엔 또 어느 도시를 가게 될까. 아직 갈 도시를 정확히 다 정한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책을 많이 사올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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