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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봉사 활동이 아니다

by 이가연

영국이 일본 정도 거리였으면 이미 며칠 전에 갔다.

신곡 준비를 멈춰야 하나. 이래서 영국 가는 비행기는, 미리 몇 달 전에 끊어져있어야 한다. 작년 12월 졸업식에서 돌아오자마자 1월에 끊었다. 그래야 1,2,3,4월을 버티고 살 수 있었다.

지금 좀 위험하다. 당일 영국 갔던 작년 8월과 매우 비슷하다. 그때 느꼈던 충동이다. 막 눈물 날 거 같고, 툭 치면 우억 하고 뱉을 거 같고, 제발 좀 살고 싶어서 비행기 끊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이걸 어째 설명해야 할까. 사람들 많은 지하철에서 토할 거 같을 때, 화장실 갈 생각만 나는 것과 같다.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 되는 그 느낌.


다음 주 주말에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그것만 끝나면 갈 모양새다. 20일만 지나면 다른 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든 타임을 잘 잡아야 한다. 지금은 그래도 스케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 이게 지나면, 터져가지고 그냥 다 통보하고 때려치울 수가 있다...


이럴 줄 알았다. 갔다 오면 바로 잡아놔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원래 9, 10월 중에 가고 싶었는데, 오빠가 9월 영국에 없다고 하고 10월부터는 추워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예정되어 있는 봉사 활동에 갔다. 그 시간 동안에는 이런 충동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럼 가짜 신호다. 진짜로 영국에 가야 하는 상태였으면,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진짜 급똥 신호면 눈앞에 차은우가 있어도 화장실에 가야 하지 않나. 지금 그 정도는 아닌 거다.


지난주에는 참관, 이번 주는 첫 수업이었다. 1시간 반 동안 13명의 아이들 앞에서 수업했다. 그것도 난생 처음 해보는 경제교육이다. 오늘은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일' 버킷 리스트와 필요한 돈을 적어보는 활동으로 시작했다. 그런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영국 가기 - 3백만 원' 따위가 떠오르지 않았으니, 이건 컨트롤 가능한 상태다. '친구 백 대 때리기' 같은 걸 적는 친구도 있는 반면, 한 친구는 '동물 구조'를 적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메인 활동은 '용돈 기입장 적기'다. 이 프로그램에선 매 주차마다 만 원씩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다.) 만 원씩 나눠주면 아이들은 그걸 용돈 기입장 '수입'에 적고, 그 다음 주차까지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적어온다. 생각해 보니, 나부터 가계부를 써야 한다. 정기 결제한 거 까먹고 있다가, 돈 날린 거 확인했다. 가계부만 썼어도 미리 알았을 거다.




나는 스스로 통제 욕구가 심하다. 통제가 안 되어서 폭주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노란 불' 감지하는 능력이 생겼다. 빨간 불 때는, 아무도 못 막기 때문에 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노란 불' 때 해결을 봐야 한다.


감사하게도, 오늘 봉사 활동이 재밌었고, 다음주 화요일 다른 센터에 가면 또 어떤 수업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 그냥 봉사 활동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활동이다. 다음주 수요일에는 또 노래 레슨이 있다. 현재 나의 하루하루를 채우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기대의 원동력이다. 대학교 휴학하고 봉사 다녔던 2019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삶은 반복이고, 그렇게 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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