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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외국인 친구를...

by 이가연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난 뒤, 더욱 내용을 보충하고자 쓰게 되었다.


외국인은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걸어도 자연스럽게 잘 받아준다. 한국인은 그 특유의 뻘쭘함과 당황스러움이 있다. 이걸 능글맞게 잘 받아주는 사람은 인싸일 거다. 그런데 내가 내향형 인간이라 내가 말 거는 대상은 주로 내향인이다. 본능적으로 기운을 따라가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망한다. 이제 나도 그 '뻘쭘함'을 느끼면 15초 안에 포기해 버린다. 'YOU ARE UNWELCOMED!'라고 팍 벽치기를 당하는 느낌이라서 불쾌하다. (ADHD라 백 배로 느끼는 것이지, 그 사람들의 행동이 잘못됐을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냥 아주 평범합니다.) 반면 외국인은 그 누구에게도 그런 벽치기를 당한 기억이 없다.


부산 펍에서 얘기하면서, '역시 봐라. 나한테 질문 단 한 개도 안 하고도 대화가 잘만 되잖아. 도대체 왜 이 쉬운 게 안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디 사는 몇 살인지 당연히 궁금할 수 있다. 이 분은 먼저 자기는 부산에 몇 년 살았고, 몇 살이라고 말했다. 그럼 나도 당연히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쭉 살았고 27살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말했는데 그냥 듣고만 있겠나. 자연스럽게 자기 얘기 > 자기 얘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몇 시간을 얘기해도 물음표가 붙을 이유가 일절 없다. 그 외국인이 특별히 한 게 없다. 그냥 신나게 본인 얘기하고, 나도 신나게 본인 얘기 했을 뿐이다.


결국,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처럼 타인에게 본인 얘기를 안 하는 거다. 외국인들은 자기가 게이라거나, 이혼 가정에서 자랐거나, 남자친구랑 동거를 한다거나, 그런 얘기를 만난 지 몇 분 만에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걸 어렵게 싹 다 설명하고 나니 첫마디로 심지어 어떤 한국인은 "그럼 자기 얘길 먼저 해주세요."라고 했다. 방금까지 계속한 게 나에 대한 설명, 내 얘기인데 말이다. 그 자리에서 집에 왔어야 하는데 아직도 분하고 후회가 된다.)


내가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살면, '내가 지금 ADHD라서 TMI를 읊나.'라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게 될 수 있다. 외국인하고 얘기하면 전혀 이상할 게 아닌데, 한국에서는 '내가 역시 ADHD...' 이래버리면 얼마나 억울하고 갑갑한가.


제발 서울 사는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제이드의 친구가 이번 달 말에 서울에 놀러 온다고 한다. 제이드는 나의 베프이고, 베프의 친구면 나랑도 잘 맞지 않을까. 일단 당장 영국 가고 싶은 충동을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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