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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지 말아 주세요

by 이가연

*글이 화가 나있음 주의*


사적인 질문. 이건 한국인이 백번 잘못했다. 재고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피부가 왜 이렇게 좋으세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좋아져요?"도 난 표정이 바로 나빠진다. 영어로는 들을 일이 절대로 절대로 절. 대.로. 없다. "How old are you?" 같은 건, 가벼운 데이팅앱에서나 쓰이지 오프라인 네트워킹 모임에서 들을 일 없다. 그러니 대화를 30-1시간 이상 한 끝에 "혹시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도 아니고 알게 된 지 10분 안에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이러면 이미 마음속으로 손절했다. 한국 와서 이 부분을 설명한 적이 너무 많다. 그건 대화 방식이 아니라 가치관 차이라 안타깝게도 두 번 다시 나를 만날 수 없다. '너는 외국 가서 살아야겠네.' 싶겠지만 그건 나도 아는데 당장은 한국에 살아야하니까 나랑 맞는 사람만 만나고 살기로 했다. 극악의 확률


내가 표정이 안 좋아졌다면, 과연 질문하기 전에 "이런 질문드려도 괜찮으실지 모르겠지만"이라고 앞에 붙였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I was wondering if~"라든지 "If you don't mind me asking"이라는 표현을 앞에 붙인다.


질문을 연달아 두 번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이런 질문드려도 괜찮으실지 모르겠지만"을 계속 붙이면서 질문 연달아 두세 번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내가 공격받게 느낀 거다.


근래엔 연달아 세 번에 도달하면 상대방에게 말한다.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대화 방식 차이라서 숨 막혀서 그런 경우엔 내 숨 쉴 권리 보장을 위해 말한다. 그때마다 주로 듣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불편한 질문은 대답 안 하셔도 돼요.

그냥 하지 말아라 제발... (땅이 꺼지는 한숨) 나는 상대방이 대화 자체를 질문으로 이어가는 사람이기에 한 말이지, 특정 질문 한두개가 불편해서 이 얘길 꺼낸 게 아니다. 그랬으면 그냥 마음 속으로 손절하고 다시 안 보면 된다. 이 얘길 꺼냈단 건, 상대방이 괜찮은 사람이란 건 알지만 대화 방식이 달라서 한 것이기에, 결코 하나의 질문 탓이 아니다.


저한테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다시 말하지만 나의 대화는 전부 마침표로 끝난다. 상대방의 무언가가 궁금할 때는 내 얘기를 먼저 한다. 질문을 하더라도 한 1시간에 한 번 하긴 할까. 사실 내가 이렇게 어렵게 말 꺼내기 전에, 내가 본인한테 아무 것도 안 물어보는데, 혼자만 나한테 자꾸 물어보는 건 실례 아닌가.


정적이 불편해서요.

정적이 불편한 거 너무 이해한다. 불안도가 높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정적을 깨는 행위가 상대방에게 책임을 넘기는 질문 이어야 할까. 자기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최근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하면 나도 신나서 최근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을 거다. 자꾸 나에게 넘겨버리니 정적이 생긴 거다. 말하는 걸 매우 매우 좋아하는 나와 마주하며 정적이 생길 리 없다. 절대!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요.

"음악 언제부터 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즉각 표정이 안 좋아진다. 반사 반응이라 표정 안 좋아지는 걸 막을 순 없다. 그렇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되게 어릴 때부터 하잖아요."라고만 말해도 알아서 궁금한 내용을 말할 거다. 난 차은우여도, 아이유여도 질문을 할 게 없다. 내 얘기를 하고, 상대방 얘기를 듣는다...



** 이 글을 제가 직접 보라고 보내줬다면 저는 질문을 두 개만 연달아 받아도 보통은 대화를 그만 두고 차단하는 특징이 있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고싶어서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20명 중에 19명 확률로 비슷한 일이 발생하여 쓰는 글이니 너무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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