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국 갑니다

by 이가연


방구가 잦으면 똥을 싸요...


더러운 비유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다 때려치우고 가지 않고, 정해진 일정이 아무것도 없는 9월에 가기로 해서 칭찬한다.


벌써 작년에 갑자기 한국 와버린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엄연히 9월 초까지 있었어야 하는데, 잘못된 선택을 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던 8월, 이러다간 내가 진짜로 어디 잘못될 거 같았다. 길거리,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누구를 마주칠 수 있다는 그 0.000000001%의 확률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다. 서울에서 0%로는 살 수가 없었다. 내가 두고 온 건 그 작디작지만 목숨 같았던 희망이었다. (몇 번을 반복한 이야기인데도, 어찌 아직도 심장이 이리 빨리 뛸까. 사우스햄튼이 아무리 작아도 그렇지, 그 '당연하게도 마주치지 못했던' 경험을 안고 한국에 돌아와 쓴 곡이 '그런 너라도'다. 많이 들어봐 주세요.)


올해는 아무리 몇 번의 위기가 있었어도, 본인이 이게 일시적임을 알았다. 어차피 나는 몇 시간만 지나면 감정이 휙휙 바뀐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작년엔 지금 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영국에 당장 가는 것만이라고 여겨졌다.




감사히도 현재 일상에 충분히 즐거움이 존재한다. 어떻게든 만들었다. 여의도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아지트들을 만들었고, 얼마 전부터는 고정적인 스케줄도 있다. '죽어가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 상태가 아니라, 제법 잘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 즐거움, 이런 건 만들기 나름이다. 그런데 그게 이따금씩 숨 막힐 거 같은 걸 막아주진 않는다.


잘 살아가고 있으면서 충동이 올라온 이유는, 사람이다. 추억이 담긴 영국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이제 그건 끝났다. 거듭 한국인과 외국인을 언급하는 글을 쓰는 것만 봐도, 그 차이에서 오는 숨 막힘이 크다. 영국인 친구 한 명만 서울에 있어도 이러지 않을 것이다.


친구와 통화를 끊고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심지어 9월에 가면 오빠는 '또' 베트남에 있어서 만나지도 못한다. 그런데 나는 친구와 영국 펍에 가야겠다. 영국 공기를 마셔야겠다. 영국 사람들과 오며 가며 하루에도 열 번 이상 "Hi"를 해야겠다. 숨 좀 쉬고 싶다.


참 재미있으면서도 슬프다.

2024년 8월 영국. 9월 영국 가는 비행기 끊음.

2024년 12월 영국. 1월 영국 가는 비행기 끊음.

2025년 5월 영국. 6월 영국 가는 비행기 끊음.

2025년 9월 영국. (이번처럼 괴로워하지 말고 그냥 바로 끊어라.)


그다음은, 2026년 2월에 런던에서 음악 교육 엑스포가 있어서 그걸 가고싶어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 사는 외국인 친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