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옷을 사는 경우도 보통 스냅사진용이거나 공연용이다. 화장하는 경우랑 똑같다. 이 글은 여름에 스냅 좀 찍고 싶은데, 여름 원피스가 0개라서 쇼핑몰에 갔다가, 영국 이후로 처음 자라를 봐서 쓰는 글이다.
그렇다. 입을 옷이 0개인 경우에도 산다. 영국에서도, 곧 겨울인데 겨울용 바지가 0개라서 사러 갔다. 0개인데 1개가 됐으니까 더 쳐다도 안 보고 그거만 입는다. 이런데 '옷장에 옷이 많은데 없다고 말하는' 보통 또래 20대 여자들과 어떻게 공감하고 대화하고 살 수 있었겠나. 그래서 지금 한국에 친구도 0명인데 1명만 있으면 좋겠다.
바지 사러 온 건데 자꾸 다른 거 입어보라 한다면... 그게 얼마든 내 마음에 들면 사준다는 엄마여도 짜증 내는 데 그게 성립이 가능한 일인가. 영국에서 쇼핑한 것도, 엄마가 옷 살 돈은 따로 더 준다고해서 산 거다. 필요하지도 않은 옷을 내 돈 주고 사라고? 미칬나.. 돈이 썩어났나..
ADHD는 TV 채널 10개가 동시에 틀어진 채로 사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ADHD를 위한 생활 습관 조언 중 하나가, 스티브 잡스처럼 같은 옷을 여러 벌 사서 아침마다 옷 고르는 스트레스라도 없애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역시 내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던 게 다 ADHD 때문이다'라는 확신이 강해진다.
이건 단순히 쇼핑에 관심 없는 게 아니다. 공연용 의상이 필요하다면, 그게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찾아낼 거다. 다만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면 전혀 관심이 없다.
그 상대랑 시간을 같이 보낼 수만 있다면 뭘 하든 전혀 상관없던 것이다. 그 '짜증 안 내고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두고두고 곱씹어도 신기했나보다. 왜냐하면 내가 싫어하는 거라면 상대가 누구든 빠르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앞에서 담배 꺼내는 친구나 애인이 있어본 적이 없다. 진짜 나랑 대화 가능 선상에 있는 인간으로도 안 본달까. 그래서 내 무의식은, 그 모든 게 다 상관이 없어지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평생 기다렸나. 이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쓸 예정이다.
여담으로 참 신기한 게,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도 영국인 거 같다. 지난 1년 안에 한국 쇼핑몰을 처음 둘러보는 거 같은데, 원피스나 드레스는 어디 파는지 모르겠다. 영국에선 친구와 둘 다 이렇게 입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진짜 전생에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영국인이거나, 조선시대에 억울하게 죽은 선교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