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라인 눈꼬리를 그리고 남자를 만났으면 이성적 호감이 있을 확률이 높다. 그게 설령 10초 걸릴 지라도. (사진을 찍을 것 같은 장소는 제외다. 커피빈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 갈 때 그런다면 90% 관심이 있다고 봐도 된다.)
만약 눈에 셰도우라도 칠해져 있으면 정말 특이한 경우다. 소개팅을 해도, 연애를 해도 잘 안 바르기 때문에 스냅사진 찍을 때나 공연 갈 때가 아닌, 남자를 만날 때 발랐다면 뭔가 의심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만일 연애를 하는데 셰도우를 발랐다면, 본연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뭔가 불편하고 안 맞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평생 마스카라가 있어본 적이 없어서 셰도우가 최고봉이다.)
누가 그걸 알까. 그래서 나는 나도 스스로를 알기가 어렵고, 남은 더욱 알기 어렵다. 그런데 남들하고 다른 내가 좋다. 사람들도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걔가 나보고 입술 튼 거 가지고 뭐라 해서 집에 와서 울면서 (카톡이니 몰랐겠지만) 얘기해서 사과받은 적이 있다. 실수한 말이 맞으니 빠르게 인정했는데, 숨겨진 이야기가 있으니 생각하는 거보다 더 상처였다.
어딘가 밖에 나가서 화장 상태를 체크하러 화장실 거울을 보질 않는다. 애초에 화장하고 나갈 일이 없지 않은가. 손 씻으면서도 거울을 안 봐서, 엊그제는 이미 나갔다 들어왔는데 거울 보니 이마에 제대로 안 발린 선크림이 그대로 묻어있어서 혼자 웃기도 했다.
'내가 지금 얘가 좋아가지고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다 보니 예쁘지도 않고 서툴고...'로 생각이 빠지고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상처였던 것이다. (1년 8개월 전인데 왜 또 울죠.)
보통 여자 같으면 금방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워낙 입술 바를 일이 없기 때문에, 바를 때면 생각날 수 있다.
나는 그 어떤 한국인이, 나의 얼굴을 보고 왜 화장을 안 하냐, 화장 좀 하면 예쁘겠다는 말을 하면 그 자리를 일어나겠다고 몇 년 전부터 다짐해 왔다. 지금 외국에 있지를 못해서, 그 당연하고 당연한 무례하지 않은 환경에 있을 수 없지만, 최소한 그런 사람을 피할 수 있는 자유는 있기 때문이다. 영국 가기 전에도 그렇게 결심하고 있었던 나이기에, 지금은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라 뭐라 하고 일어날 거 같다. 가뜩이나 외국에 있지 못한 것도 답답한데, 그런 말을 들으면 나에겐 히잡을 안 쓰면 죽을 수도 있는 나라에 있는 느낌이랄까.
이 글은 입술 칠하다가 생각나서 쓰게 되었다. 상처는 참 이런 식이다. (다만 이 정도까지 각인될 줄 알았다면, 절대 뱉지 않았을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