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치유
용서하기 어려운 상처는 글로 쓰지도 못 한다. 상처 받았던 이야기를 글을 쓸 때, 이미 그걸 알고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가뿐하다. 내 안에서 치유가 잘 되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칫 '상처가 많아 힘들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생각할 만한 상처는 상담사나 의사, 그리고 신부님과 다름 없는 오빠만 알 수 있다.
어떡해
'네 인생을 흔들만한 사람이 아니면 흘려보내라.' 그럼 내 인생을 완전히 흔든 사람은 어떻게 해야 돼. 잘하는 게 노래하고 글 쓰는 거라서 내내 그러고 살고 있는데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아?
스네이프의 눈물
곡을 내놓는 건, 마치 해리포터에서 스네이프 교수가 죽기 직전에 눈물을 흘리며 해리에게 받아가라고 하는 것 같달까. 해리는 그 눈물을 받아서 펜시브에 넣고 스네이프의 과거를 보게 됨으로써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서 나온 곡들이 바로 그 눈물 같다. 당장 내가 죽더라도 이건 전해야겠다는 그 의지로, 스네이프는 죽기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에게 건넸다면 나는 당장 죽을 일은 없으니 일단 세상에 동동 띄워놓는다.
ADHD
애초에 나는 5%에 드는 사람인데 나머지 95%가 어찌 나를 이해하겠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사람이 열 명 있으면, 그 중 두 명은 날 싫어하고, 두 명은 날 좋아하고 같은 걸 떠올릴 필요도 없어졌다.
소튼 앤 창원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돈다발 들고 좋아하는 무지님. 그러고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남쪽에 있다. 둘 다 내 기준 시골이다. 바닷물은 보이는데 해변가는 없다. 지하철은 없는데 기차역은 잘 되어 있다. 소튼도 볼 거 아무 것도 없는데 배 타고 가면 아일 오브 와이트, 마산도 돝섬이 있다. 동북아 중심 도시라더니 그냥 한국의 소튼이었네.
추신. 100만 창원 시민 여러분, 애증에서 나오는 말이니 노여워 마십시오.
용서
예전에 상담 받을 때,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용서 받아본 경험이 있냐고 물으셨다. 없다. 용서라는 단어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 게 사랑인 거 같다. 내가 만일 '그래. 저 사람을 내가 용서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주문 거는 것이지, 진짜 괜찮은 게 아닐 것이다.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반복적으로 역지사지가 되던 것, 그냥 다 이해가 되던 것, 이건 참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