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발음
영어 노래를 부를 때, 가끔씩 영국 발음이 나올 때 신기하다. 'When Will My Life Begin' 모니터링을 하다가 눈이 확 떠졌다. 'sure', 'hair'처럼 'r' 들어가는 발음에서 차이가 보인다. 특히 'more'은 'o' 모음부터 영국이라 '풉'하며 다시 들었다.
'Beauty and the Beast'는 더 확실히 들린다. 반평생 '뷰리'라고 불러왔는데, '뷰티'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little'도 '리를'이 아니라 '리틀'이다. 그런데 'bitter'은 그냥 '비러'라고 부르는 등, 군데군데는 그대로 남아있다. 미국과 영국 발음이 섞여서 네이티브들은 다소 희한하게 들릴 수 있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승차권 확인
역무원이 "승차권 확인하겠습니다." 하며 지나가니 나도 코레일앱을 켜고 승차권을 준비해 뒀다. 그렇지만 그 앞에 있던 사람이 자리를 잘못 앉아있어서 확인하신 것일 뿐, 나는 그냥 지나가신다. 피식 웃었다. 영국이나 일일이 확인하지, 한국은 안 본다니까.
잔소리
뇌에 과부하만 안 걸리면 된다. 조언을 들으면 '내가 그걸 모르겠냐, 안 해봤겠냐, 얼마나 할 데까지 다 해보고 쓰러진 상태인 줄 아냐' 등의 생각으로 뇌가 폭파될 거 같다. 하지만 잔소리는, 상대방도 내가 그걸 알고 있단 걸 안다. 알고 있는 걸 상기시켜 주는 거다. 그러니 잔소리는 들으면 '알았어. 할게.'라는 아주 간단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잔소리는 보통 관심과 사랑에서 나오지만, 조언은 모두 나를 제대로 안다면 하지 않았을 '무지'에서 나왔다.
거짓 알람
'설레지 않는 일은 취소하라'라는 나를 위해 저장해둔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작년에 한국 돌아온 이후로, 이게 직감인지 충동인지 구분하는 데에 있어서 두려움이 생겼다. 그 선택 하나로 그렇게 인생 최악의 시기를 맞이할 줄 몰랐다.
심한 몸살로 아팠다.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늘 나를 위해 체크하는 세 가지가 있다. '배고픈가, 잘 잤는가, 아픈가.' 지난 몇 년 동안, 이 세 가지 중에 두 가지 이상 충족되지 않았으면 짜증내기 전에 그거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공식을 가지고 살았다.
선택 직전에도 적용하면 된다. 하나라도 충족이 안 됐다면 선택하지 말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중요한 선택을 할 일이 일상에서 얼마나 발생하나. 돈 워리.
한과 울분
영국 전후로 달라진 건 자작곡뿐만이 아니다. 커버곡을 부를 때에도, 가끔씩 전보다 울분이 섞인 감정선이 느껴진다. 이건 영미권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한의 정서다. 이따금씩 노래에서 한이 느껴질 때면, 아직도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