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공연과 집중력

ADHD

by 이가연

어떻게 해야 공연하면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곡마다 특정 상황과 장소를 상상해서 부르자고 생각했는데 잘 적용이 안 된다. 노래에 몰입했을 때와 집중력이 다 흐트러졌을 때는, 관객들이 듣기에는 비슷할지 몰라도 내겐 천지 차이다.

집중이 안 되는 대표적인 이유는, '오랜 시간 많이 불러와서'다. 집중 안 하고 딴 생각만 하면서도 가사가 술술 기계처럼 나온다.


'보름달 이쁘다. 어떻게 저렇게 노랗고 동그랗지. 이따가 끝나고 달 보면서 소원 빌고 가야지. 와 집중 겁나 안 되네. 걔 여기 앞에 있다고 생각이라도 해야하나. 여긴 창원이다.. 서울일 걸?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옆에 바닷물도 있고 비슷하잖아. 됐다 됐다 핵 부담스러워. 몰입하려다가 미치는 꼴 보고싶냐. 저기 한 명 쳐다보고 할까. 아냐 표정이 잘 안 보여. 저 사람들이 다 노래를 듣고 있는 거야? 우와 저기 배 지나간다. 우왕~ 근데 배에서 음악 소리 들리는데. 내 소리랑 겹치는 거 아냐?'


이 모든 생각을 30초 안에 다 하면서 노래는 다 잘 부르고 있다. (ADHD인이면 이 부분을 정말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때도 이런데 일상 생활에선 어떻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 불러도 문제 없이 잘 부르니 생긴 일이다. 가사 잊을까봐 긴장했으면, 매 공연이 졸업공연이라고 생각했으면 조금은 달랐을 거다.

그렇다면 곡마다 나만의 평가 기준을 세워두는 것도 방법이겠다. 예를 들어, 다음에 '아직, 너를'을 부르게 될 때에는 '1절 시작할 때부터 감성적인 분위기 조성을 잘 했는지. 2절 후렴부터 감정선이 너무 커지지 않았는지. 마지막 후렴에서 흥분하지 않고 절제를 잘 했는지.' 세 가지를 확인할 것이다.

ADHD 약을 먹으면 이런 노력과 생각을 안 해도 아주 편하게 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약들이 다 안 맞는 이상, '내가 하고자하는 일에 핸드캡이 생기지 않기 위해' 나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끝까지 강구할 것이다.


ADHD 때문에 못하면 안 해도 되는 일도 있다. 그런 거 일반인처럼 다 하려고 하면 뇌 과부하로 일찍 죽는다. 반면 무대에 서는 일은 죽을 때까지 할 일이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이것만 잘하면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인 ADHD 여성, 일반인보다 8.64년 일찍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