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이 사랑

그런다고 치유될 상처가 아니야

by 이가연

ADHD와 우울증이 겹쳤을 때 드러나는 대표적인 특징은, 말할 때 필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진심으로 다루고 싶었지만, 당사자가 글을 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하지 못했다. 그럴 확률은 극도로 낮고, 내가 숨 쉬고 살기 위해서 세상에 던져야할 말인 거 같다. 숨 쉬고 싶다고 당장 영국에 날아갈 순 없으니, 글쓰기와 노래가 그 숨 쉴 구멍이다.




가족이 아닌 이상, 살면서 이렇게 몸에 각인되는 상처는 처음 받아봤고,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 이유는 분명 그당시에 가족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길가다가 쓰러져서 영국 응급실에 실려가면, 눈 떴을 때 옆에 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통화 기록을 봐라... 한국말 몰라도 내 휴대폰 최근 통화기록 보고 병원에서 전화할 것이 아닌가. 만일 내가 의식이 없다는 전화를 받았더라면, 난 걔가 수업 중이든, 곧 자려고 했든, 바로 병원으로 왔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그랬을테니까.


정말 마음을 다 줬었고, 지난 1년 7개월 내내 걔가 부른다면 지구상 어디든 바로 갈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 마음을 알면, 작년 8월에도, 11월에도, 이런 거 진짜 하지 말라고 한 번 더 말해줄 수 있었다. 너무 그리워서 혹시라도 마주칠까봐 하는 마음으로 영국 온 거 알았으면, 한 번만 더 싫다고 말해줄 수는 없었나. 정말 그렇게도 쉽게 무시가 되었나.


그건 못 알아들은 거 같으면, 꼭 정말 싫다고 다시 말해줬어야하는 마음이었다. 2월에 연락하지 말라고 한 건 알지만, 8월에 '누가 너 영국 오면 만나준댔냐고 미친'라고 했더라면... 진작 작년 여름에 마음이 끝났다. 그런데 그 하지 말란 말을 못 들으니, 그냥 지금 상황이 아닌가보다 하고 계속 시간이 가기만 버티게 되었다.


비공개 차단이기 때문에 카톡 프사가 뜨기를 3천번도 더 쳐다봤다. '꺼져' 들은 것과 마지막 통화 얘기만 계산해볼까. 오빠에게만 최소 주3회 언급했으니, 한 달이면 12번, 오빠에게 이 얘기를 작년 5월쯤부터했고, 작년 7-9월엔 이 얘기를 거의 매일 했기 때문에 대략 200번이다. '걔와 마지막 순간' 얘기만 200번이다. '걔 보고싶다'라는 말은 하루에 2번씩, 저 시기엔 더 했다고 치면, 대략 천번이다. (이러니 오빠 꿈에 나올만도 하다. 이 오빠가 없었더라면 진작 큰 일 났다. 하늘이 제발 잘 버티고 살라고 작년 2월에 보내준 사람임이 틀림 없다. 이 사람은 하늘이 보낸 사람이다.)



그 '꺼져' 소리를 듣는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지면서 너무 아팠는데, 정말 극심한 통증이 작년 1월에만 백번이다. 플래시백 현상으로 신체적 통증이 느껴지는 건데, 정말 그건 코로나를 5번 걸리는 거보다 더 아팠다. 그래서 도무지 그만 말할 수가 없다.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어쩌다 그때의 1/100 수준의 고통으로는 느껴진다.


몇 번이나 울었을 거 같나. 몇 날이나 괴로운 밤을 보냈을 거 같나. 이게 정말 '차단만 풀면' 되는 일 같아 보이나.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무얼까. '제발 아무 말이라도 듣고 싶다' 말고, 내 마음에 1000% 드는 말이 뭔가. 설령 나에게 '사랑해'라고 한다한들, '웃기지마. 그럼 니가 나를 그 지경으로 냅뒀을 리가 없어.'하지 않을까.


이건 '나도 너를 정말 사랑한다. 나도 너 아니면 안 될 거 같다. 너가 너무 진심인 거 같아서, 나도 그런 진심 어린 마음을 준비하느라 늦었다.'같은 내가 할 법한 미친 소리를 해야 치유될 상처다. 그런데 내가 본인 가지고 쓴 앨범이 나온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 반응도 없는 사람인데, 조금의 현실성도 없다. 인생에서 아예 지워졌을 확률이 더 높지 않나.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마주하지 못한 이유도 잘 알겠다. 당장 일단 차단만이라도 풀렸으면 좋겠으니까. 당장 살아는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간단한 거 물을 수 있는 사이만이라도 되고 싶으니까. 그 간단한 것도 비현실적이고 기적처럼 느껴지는데, 어떻게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들여다보기 쉬웠겠나.


내 노래들은, 들었으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정말 진심 어린 곡들이었다. 나의 유튜브와 브런치는, 대충 둘러만 봐도 당사자는 미칠 만한 컨텐츠로 가득하다. 그래서 아예 안 보는 건 가능해도, 하나만 보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 1년 중에 단 한 번이라도 찾아봤으면, 계속 다 볼 수 밖에 없다.그래서 줄곧 오빠도, 이건 아예 안 봤거나 다 보고 본인도 미치겠거나 둘 중 하나, 극과 극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앨범 안 들었다고 생각하면 뭐 당장 죽고 싶기라도 한가.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다. 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이 상처를 치유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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