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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할머니 고향

by 이가연

가만 생각해 보면 영국 가기 전에도 경상도 사람 만나면 사투리가 금방 옮았다. 전라도 사람은 안 옮던데?


친할머니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두 분 다 경상도 사람이셨단 걸 엄마가 말해줘서 이제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충청도 분이란 건 진작 알았다. 외할머니와는 상당히 친하게 지내는 편이고, 고향에도 자주 내려가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외할머니 집에서 온라인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상담쌤이 지금 할머니집이라 사투리 쓰는 거 같다고 얘기해 주셔서 '할머니랑 대화하면 사투리가 배는구나'하고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게 2022년 아니면 2023년 초반이었다.


그전엔, 사투리가 아니라 '할머니 말투'인 줄 알았다. 다른 '서울' 할머니들과 교류가 없었으니까. 예를 들어, '할머니'를 '할마씨'라고 부르시던데, 그게 그냥 할머니들이 쓰는 말인 줄 알았다.


충청도가 아니구요?



방금 친할머니와 통화했다. 이런 목적으로 통화한 적은 처음이라 참 두근두근하며 전화를 걸었다. "못하겠고"를 "모다겠고"라고 하신다. 미쳐버리겠네. 이걸 이제 알다니.


이야... 덕분에 평생 모를 수도 있었던 조부모님들의 고향에 관심을 가졌다.

- 외할머니 : 충북 영동. 고향에 자주 가심. 경상도에 가까운 충청도임. 무엇보다 전라도 사람 싫어하심.

- 친할머니 : 경북 상주. 외할머니보다 사투리 심하심.


그러니까 니가 사투리를 잘 쓰지...


아빠가 66년생, 엄마가 71년생인데 서울 출생이다. 66년도 전까지만 경상도 사셨다는 건데, 아직도 사투리가 남아있으신 게 더 신기하다.


그것이 뭣이 중하냐믄 특정 인물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 것이 아니라 사투리 탓이었다는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어떤 말투에 따뜻함을 느꼈겠나.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경북에 가깝지... 절대 경남 쪽은 아니야. 이것은 너가 길 가는 창원 사람마다 귀신 같이 골라내는 걸 전혀 설명해주지 못해.


애쓴다 애써 진짜.


그렇지만 조부모님들과 한 뼘 더 가까워진 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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