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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나만의 공연장

by 이가연

외국에서 야외 공연하는 나를 만들어봤다.


컴퓨터 게임도 한 번 안 해봤고, 컴맹 수준인 나는 설치해서 로그인하는 거부터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다. 사진, 영상 편집도 다 핸드폰 앱으로 한다.


비슷한 거라고는 중학교 때, 스마트폰 처음 가졌던 시기에 핸드폰 게임 중에 무슨 도시 만들기 같은 게 있었다. 그땐 간단했다. 건물 선택해서 어디다 둘 지만 클릭하면 뾰로롱 건물이 생기고, 코인은 촤라락 깎이고 끝이었다. 5분 기다리면 농작물 수확해서 코인 모으고 그걸로 또 건물 짓는 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건 코인도 필요도 없고, 클릭만 하면 사람, 물건, 연못, 나무가 뚝딱 생기니 좋다. 다만 로딩이 뭔가 매우 느리다. 아무래도 노트북 사양이 안 좋은 거 같다.


예전에 공감되었던 ADHD 특징 중 하나가... 설명서대로 그대로 따라 하는 걸 못하는 것이다. 튜토리얼도 안 보고, 때려치우려고 하다가 인내심을 가지고 튜토리얼을 봤다.


밴드를 구상해 봤다. (역시 튜토리얼은 계속 시청하기가 어렵다. 내 맘대로다.) 한 가지 건의사항이 생겼다. 베이스, 어쿠스틱 기타는 있는데 일렉 기타는 없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일렉이 있어야 밴드를 만들지! 콘트라베이스, 카혼, 어쿠스틱 기타, 드럼, 키보드 그리고 제일 앞에 파란색 티셔츠 입은 여자가 나다.


나는 외국에서 노래하고 싶기 때문에, 누가 봐도 외국인인 히잡 쓴 레이디들을 왼쪽에 넣었고, 아이들 앞에서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아이들도 넣었다. 그러다가 '혹시 땡볕에서 노래 부르는 게 꿈이야? 어우 절대 아니지.'싶어서 조절해보려고 했으나, 배경을 저녁 시간으로 바꿔도 달라지는 건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외국에서 공연하는 내 모습을 그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만일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된다면, 공연장을 짓고 싶다. 최정상급 인기는 영원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의 라이브가 보고 싶은 팬들은 있을 거다. 내 공연장이면 아무 때나 와줄 사람만 있으면 공연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절차를 최소화하고 편하게 죽기 직전까지 공연하고 싶다. 물론 라이브 펍을 차려서, 주인장이 맨날 거기서 노래할 수도 있지만 그건 꿈이 너무 소박하다.


정말 누가 봐도 '우와 유럽이야?' 싶은 공연장이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디즈니, 올드팝, 발라드를 주로 부를 거기 때문에 이에 어울리긴 해야 한다. 칙칙~하게 모던한 건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고풍스러워야 한다. 빨간색과 금박이 떠오른다. 구글에 'london theatre'만 검색해도 나온다. 그리고 천장에서 색종이 조각도 막 떨어지면 좋겠다.


'니는 인생이 절대 지루하지가 않겠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에만 삶이 지루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뭐라도 하고 있다. 희한하다. 그렇다만, 이 글이 어느 매거진에 속해있는지 보면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다. 누가 뭘 예전에 해놓은 것을 보다 보니 '나도 할래'하고 찾아본 것이다.


동기가 동기인지라 계속 '가지가지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만 아주 쓸데없는 기술은 아니다. 영국에서 리사이틀 전에, 생각하는 무대 도면을 그려서 보내라고 했을 때 그림을 유치원생처럼 그려서 부끄러웠다. 그런데 위와 같이 만들어 보냈으면 있어 보였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아직 그 멋진 공연장 만들 줄은 모른다. 공연장만 어떻게 만들어두면 나중에 유명해져서 콘서트를 하게 되었을 때, 상당히 도움 될 거 같다. '여기다 이거 놔주시고, 여기 있던 건 이 곡 끝나면 치워 주시고 조명은 이렇게 해주시고'와 같은 말을 시각화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만 해도 이런 뮤지션 없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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