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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고맙다

by 이가연

저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찢어지지도 않았는데 옷을 왜 버려!"라고 했던 엄마를 제외하고 나보고 옷 못 입는다고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나름 차려 입고 나간건데, 옷을 너무 충격적으로 입어서 뭐 입었었는지 기억한다던 건 심했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뮤지션이고 보여지는 면이 중요한 사람인데, 평상시부터 패션 지적을 들으면 과연 무대 위나 중요한 자리에서 내가 잘 골라 입을까 싶었다.


내 노래를 듣고 저렇게 디테일하게 지적한 친구는 없었다. 그중엔 정말 지적할 부분이 없어서 마냥 좋다고 한 사람도 있었을 거고 있어도 모른 척 한 사람도 있었을 테다. 그냥 들리는 대로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공대생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음악적 감각이 보여서 너무 놀랐다. 보컬 레슨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내 노래에 대한 지적을 거의 전부 수용하고 있었다. 송폼, 벌스, 프리코러스, 싸비와 같은 용어는 몰라도 내가 다 반영해서 고칠 수 있게 얘기했다. 예를 들어 크레셴도를 그라데이션이라고 하는 식이다. 이쯤 되면 내가 공대생에 대한 편견이 어지간히 심했나 보다.



이 친구는 나보고 최신 노래를 듣고 송폼 분석을 하라지를 않나, 대중들이 좋아하려면 귀에 확 꽂히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네 노래는 한 번 들으면 몰라서 여러 번 들어야 한다는 등 말투만 친구일 뿐 전부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을 했다. 사람들은 나를 인디 뮤지션으로 알고 대중 반응과 상관없이 자기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할 거라 생각해서 "그래, 네 특색이 잘 드러나네. 보기 좋다." 하며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 반응이 좋아야 좋아하는 걸 알고, 다음 발매곡은 지금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인 걸 아는 사람은 저렇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나 보다.


B파트랑 C파트가 너무 똑같다는 지적만 해도, 얼핏 생각했음에도 무시해 버렸던 부분이었다. 내 느낌대로 연주하고, 소위 내 노래에 취해있느라 벌스, 프리코러스, 코러스 파트마다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자작곡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 곡이니 마냥 사랑스럽고 다른 사람들도 사랑스럽게 바라봐줄 거라 기대하게 된다.


자작곡을 들려줬을 때, 고칠 게 너무 많다고 한 사람은 참 처음이라 재밌으면서도 너무 감사하다. "이건 스케치라고 이 시키야. 이제 막 연필로 스케치만 해둔 걸 가지고 얘기하면 안 되지!"라고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저 곡을 발전시키고 음악적으로나 보컬 테크닉적으로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다니 이건 기적에 가깝다.


같은 전공생이거나 뮤지션은 서로 조심스러워서 이런 얘기를 나눌 친구가 생기기 어렵고, 다른 분야 친구는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사이라 해도 음악적 감각이 없으면 진심으로 지적할 부분이 생각이 안 나서 할 말이 없을 수 있다. 이쯤이면 전생에 공대에 불 지른 게 아니라 건물 하나를 세운 게 아닌가 싶다. 특히 노래에 대해 솔직하게 감상평을 얘기해 주는 친구는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이라,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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