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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Dec 24. 2023

#10 오 샹젤리제

런던-파리 여행 짧은 글 1편  

가방 

여권 든 가방은 소중하므로 화장실에 들고 갔는데

화장실에 두고 온 건에 대하여.

감사하게도 바로 가져다주셨다.



카페 자리 찾아 삼만리

주말의 런던은 주말의 강남 같다.

비싸고 자리 없는 것이 어딘가 익숙하다.



반가운 일본어

런던 가면 왠지 모르게 일식당을 찾게 된다.

교실에서 내내 중국어만 듣다가 편안했다.



두 번째

처음 왔을 때 너무 감격스럽고 좋았던 곳이라 해도 두 번째 방문에선 아무 감흥도 없고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을 수 있다. 누구랑 왔는지, 얼마나 피곤한 상태로 왔는지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같은 장소라 해도 감정은 달라진다.



영국 유머

"어, 너 여권 사진은 웃어도 되나 보네. 하긴 영국 사람은 miserable 하니까."



에어비엔비

런던 숙소는 참다못해 홀딱 벗고 자도 더웠는데

파리 숙소는 옷을 세 겹으로 입었는데도 추웠다.

거 감기 걸리기 딱일세.



한국

한국 돌아가기까지 최소 9개월 남았다. 런던에서 파리 가는 비행기 탔을 때 문득 이 비행기가 한국 가는 비행기면 어떨까 싶어 뭉클해졌다. 그런데 엄마가 한국 눈 왔다고 집 근처 영상 보내준 걸 보니 바로 안 가고 싶어졌다. 여전히 유럽은 사랑스럽다.



카프리썬 

모르는 음료들 사이에 유일하게 아는 카프리썬만 쳐다보고 있는 거 들켰나. 크로크무슈 시켰는데 "음료도 시킬 거냐"가 아닌 "카프리썬 줄까"라고 물어보셨다.



손잡이 

전철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려야 문이 열리는 구조였다. 10초 안에 그 손잡이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여 결국 다음 역에서 다른 사람이 내리는 거에 따라 내렸다. 사람 없는 이른 아침부터 일정을 시작했더니 이런 일이.



벨소리 

익숙한 삼성폰 벨소리가 울려 퍼지니 낯선 파리 지하철 칸은 서울 메트로가 되었다.






한국인의 정

모자부터 장갑에 목도리까지 아낌없이 주신 한국인 아저씨. 진짜 내가 너무 추워 보였는지, 자식이 있으신지는 모르지만 꼭 내 또래였는지, 여자 혼자 처음 파리 왔다고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한국인의 정'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처음 간 한식당에서 찌개 한 숟갈 먹고 울어서 먹을 거 받았을 때보다, 감기 걸렸을 때 유일한 학과 한국인 친구가 감기약 줬을 때보다 더 울었다.


이렇게 받기 다 미안하기도 하고 아까부터 눈여겨보던 귀여운 강아지 인형이 있어서 하나 사려는데 카드 결제가 안 된다고 하셨다. 현금은 한 푼도 환전 안 해왔기에 그럼 한국돈으로 계좌이체 하겠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고 봉투에 넣어 주신 아저씨. 바로 건너간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샤크레쾨르 대성당에서 꼭 복 받으시라고 돈 많이 버시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샹젤리제 

샹젤리제 거리에서 샹젤리제 노래 부르기를 달성했다. 그런데 샹젤리제 거리한테는 미안하지만 좀 가로수길 같았다. 과거 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 불렀을 때랑 기분이 비슷했다. 역시 노래는 그저 그런 풍경도 아름답게 한다.



스텔라장

당장 비 올 것 같은 우울하기 짝 없는 날씨에 길을 걸어도 스텔라장 'L'Amour, Les Baguettes, Paris' 노래면 낭만 천국이 된다. 앞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혼자 걸었던 파리 거리로 돌아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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