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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연 Dec 27. 2023

#11 그림 속 이상형

파리 여행 짧은 글 2편


그림 속 이상형

인상주의 작품을 보다 보면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알 수 있고 마치 그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른쪽 구석에 있는 남자의 얼굴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서 저 남자를 꺼내오고 싶었다. 아니, 내가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오뚝한 코, 쌍꺼풀 있는 눈, 마치 21세기를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6개 국어 

불어는 초급 수준이라 계산 안 했는데, 이제부터 공식적으로 6개 국어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회화를 못하는 나라는 혼자 가본 적이 없어서 괜히 미리 걱정했다.


앞으로 가볼 무수한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 프리토킹이 될 때서야 가면 언어만 익히다가 인생 마감한다. "계산서 주세요" 정도만 해도 관광객으로서 훌륭하다. 지구가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통역관으로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데 아쉽다.





달팽이 요리

작년까지만 해도 먹는 것도 여행의 재미라는 사실을 몰랐다.

달팽이 요리는 최고였다.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점원을 불렀더니 친절하게 이쑤시개로 보여줬다. 너무 맛있어서 두고두고 생각날 맛이었다. 조개에 달콤 짭짤한 양념이 섞인 맛이랄까. 양념맛은 치즈와 양파 그 중간 어딘가였다. 아무튼 맛있었다. 누가 그냥 입에 넣어줬다면 달팽이인 줄 몰랐을 거다.



한국인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헷갈리는 혼자 온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괜히 '깜짝야', '앗 뜨거워' 혼잣말을 하게 된다.



서점

사진 찍는 게 금지인 서점도

서점을 줄 서서 들어가기도 처음.

그리고 당연히 헤밍웨이가 자주 갔던 서점도 처음.





시야

하나에 꽂히면 시야가 좁아진다. 런던 윈터 원더랜드를 작년에 이어 다시 가는 것에 꽂혀서 숙소를 윈터 원더랜드 근처로 잡았더니 망했다. 방 사진도 제대로 보지 않고 정말 위치만 봤다. 그런데 정작 작년에 와봐서 아무런 감흥도 없고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거의 들어가자마자 숙소에 돌아가게 되었다.

파리에 와서는 저녁 7시 반에 체험 신청한 것을 계속 이상하게 염두하며 일정을 짜고 있었다. 7시까지 다른 곳에 있다가 마지막에만 이동하면 되는 것을, 어차피 파리 시내는 거기서 거기라 큰 이동도 아닌데 이상한 관광 루트를 짜고 있었다. 한국인 아저씨가 거길 왜 가냐며 얼른 유명한데 먼저 찍고 와야지라고 해줘서 다행히 몽마르트르를 다녀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둘째 날이 4박 5일 일정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컨디션이 어딜 가든 허락하는 날이었다.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그 예쁜 몽마르트르를 못 갔을 거다.



한국어 안내 방송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가 많으니 각별히 주의하길 바랍니다."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파리의 밤

파리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빨리 해가 졌다. 5시면 깜깜한 밤이 되고 조명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에서와 다르게 파리에서는 빨리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파리의 밤은 아름다웠다.



휴대폰 배터리

미리 예약해 둔 투어 때문에 최소 13시간 이상 집 밖에 있을 예정임에도, 가방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집 키는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으며 체크카드는 핸드폰 케이스에 항상 있다. 혹시 몰라서 영국 신분증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 보니 핸드폰 배터리를 미친 듯이 아꼈다. 보조 배터리가 없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꺼지면 집에 돌아갈 수 없기에 필사적으로 사용을 자제했다. 데이터도 필요시 외에 켜지 않고 비행기 모드를 애용했다. 이는 단순히 배터리를 아끼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을 안 함으로써 진정으로 여행을 더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갑자기 비가 왔다. 집에 아예 우산이 없다던 영국인 친구가 떠올랐다. 나 역시도 일기예보에 내내 비가 예정임에도 여행에 우산을 챙겨 오지 않았다. 영국인 다 됐다.



나 지금 배고픈가

작년 이후로 배고파서 짜증 내는 여행은 다시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도파민은 배고픔을 잊게 한다. 그래서 점심, 저녁때가 되면 의식적으로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다. '나 지금 배고픈가' 짜증 내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먹은 음식들이 다 기억나면 곤란하다. 하나하나 기억난다는 것은 그만큼 별로 안 먹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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