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말해도 된다

by 이가연

한국인들이 해외 나가서 아플 때, 병원에서 1부터 10까지 중에 어느 정도 아프냐고 물었을 때 생각하는 거보다 더 높게 숫자를 부르라는 말을 전에 책에서 읽었다. 그 비슷한 예시가 기억난다.


영국 학교에서는 과제나 시험에 대해 'Special Consideration'이라는 게 있었다. 내가 과제나 시험을 치르기 어려운 사유가 있으면 과제 기한을 연장시켜 주거나 시험 후에도 점수를 올려주는 거다. 기숙사 소음 문제를 학교와 상의했을 때, 그 문제로 리사이틀에 방해가 됐으면 'Special Consideration' 신청을 하라길래 절레절레했다. 소음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영향을 받고 힘들었던 것은 맞다. 이후 학기 말이 되었을 때, 친구가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그걸 신청했다는 걸 들었다. '그게 말이 돼?' 싶었는데, 친구는 진짜로 과제 기한이 연장되었다.


내가 만일, '지금 리허설하면서도 울고, 도저히 무대 위에 올라가서 눈물을 참기 힘들 것 같을 정도로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학교에 보고했으면 리사이틀을 무조건 미뤄줬을 것이다. ADHD 진단을 그때 안 받았어도, 그 말이면 충분했다. 한국인다웠다. (진단을 받았더라면 훨씬 더 쉬웠다. 영국에선 '장애'에 들어가는데 학교는 매번 장애 유무를 묻는 설문조사를 보내왔고 나는 늘 당연하게 '아니요'를 체크했었다. 역시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사실이 과연 진실일까'에 대한 의문을 늘 품어야하는 것인가.)


친구는 심지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거의 일주일 만에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이미 헤어진다만다 할 때부터 만나고 있었다. 물론 내적 갈등을 했지만, 내가 리사이틀 때 다 죽어가며 준비하던 것에 비하면 친구는 충분히 과제를 미리미리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진작 한 달 전에 글로 쓰는 과제는 다 끝내 두고, 리사이틀도 3주 전에 당장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해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언제 우울해질지, 아플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미리해두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그 12월에도,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미리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일이 일어났을 때, '진짜 잘했다'고 생각한 마음이 선명하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에 맞는 전략이 몸에 다 배어있다. 하지만 전략이 다 짜져 있다고 해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는 기회를 나부터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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