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웃으면서 걷네.
어제 최면 이후로, 길을 걸으면서 과거 생각이 나는데도 계속 웃고 있었다. 어쭈? 싶어서 나를 감정적으로 좀 힘들게 만들던 노래들을 들으며 걸어도, 변함없었다. 상황이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맨날 슬픈 노래 들으면서 괴로워하며 걷다가, 어떻게 갑자기 웃으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을까.
'좋았던 기억을 의식적으로 떠올리자'라는 노력을 해도 잘 안 됐었다. 혼자 의지로 안 되는 영역도 있다. 최면에서 너무 생생하고도 행복하게 학교 공연장, 벤치, 중국 식당, 버스까지 장면을 맛봤다. 무대 조명에 비쳐서 객석을 바라볼 때 먼지가 흩날리는 것 같은 그 느낌까지도 봤다.
그동안 '뭐라도 연락이 와야' 영국, 창원, 영국, 창원 왔다 갔다 하는 이 징글징글한 루틴을 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건 당사자가 나한테 뭐라해서 잘라주지 않으면 멈출 수가 없다고 믿었다. 다 살려고 하던 짓이라, 그냥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거밖에 할 수 없었다.
이제 그 고리를 자른 것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미 내 안에 너무 살아 숨 쉬고 있어서, 더 이상 그 장소들을 강박적으로 갈 필요가 없다. 당장 그냥 여의도 집 앞을 걸어도 충만한 기분으로 걷는데, 그 도시들을 꼭 가야만 가슴이 충만해지는 게 아니다. 원하고도 원하고도 원하던 상태다. (슬슬 내년 돈 걱정이 심히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내년 걱정은 미리 하는 거 아니다.)
무의식 깊은 곳, 영적인 세계 탐험을 한 느낌이다. 상대방이 내 앞에서 엉엉 울면서 사과하고, 나랑 밥 먹고, 버스 타고 이동하며 함께하는 걸 영혼 세계에서 이미 겪은 느낌이다. 그러니 그게 실제로 이뤄질지 여부는 지금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 그런 경험을 어제 해서 좀 어벙벙하기도, 슬프도록 아름답기도, 행복하기도, 설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