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여자에게도 지금도 그러고 있을 수 있지 않냐. 왜 나한테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냐"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상처다. 그런 식으로 말한 사람들은 다 잘라버려서 없지만, 이번 최면 상담에서도 어쨌든 처음에는 또 똑같은 오해를 받았다.
내가 엄청 설명해서 뒤늦게 상대방이 '아니었구나'라고 말을 하더라도, 내가 이미 '이 부분 건드리면 분노한다.'라고 선언해 버린 이상, 괜히 나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알겠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확실히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지긋지긋한 설명과 오해도 끝이다. 이 사람들은 99%의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걔, 아빠, 나, 셋 다 똑같다. 걔는 잘 모른다고 쳐도 아빠는 잘 안다. 이 사람은 상위 1%, 아니 어쩌면 상위 0.5%의 사람이다. (일단 경제력은 확실히 1%다. 그런 경제력을 가지려면 얼마나 똑똑하고 비범해야겠는가.) 그러니 친구가 엄마밖에 없다. 천재는 외롭다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나는 예로부터 이 사람의 90% 복제품이라고 생각해 왔다.
예전 상담사도, 내가 기대하는 대화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했다. 그러니 보통 사람하고 대화하면 너무 답답하고, 시도하고 시도해도 인간 혐오만 커지는 단계가 왔다. 예를 들어, 소개팅에서 "영국인은 그러면 미국인이 영어 하는 거 못 알아듣냐?", "좋아하는 영화 있어요?" 이딴 질문하면 단전부터 뭔가 치밀어서 바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셋 다 똑같다는 건, 걔도 똑같을 거란 거고, 기대하는 대화 수준이 높은데 그거 맞을 사람 잘 없을 거다. 그게 "다른 여자들에게도 그러고 있을 거 아니냐"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애초에 나 같은 여자가 잘 없으니까.
심지어 걔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내가 걔 손바닥 위에서 재롱 부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걔도 세상에 대화하기 답답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일 거다.
오빠도 예전에, '어느 남자가 너를 컨트롤할 수 있겠냐.'라고 했다. 왜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면 내가 바로 화내고 잘라버린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니까 내가 듣고 있던 거다. 그런 사람은 0.5% 밖에 없다. 나머지는 '내가 그걸 모르겠냐', '니도 생각할 수 있는 걸 내가 안 해봤겠냐' 싶은 말만 해서 화나게 한다. (사실 이는 걔도 ADHD가 분명하다는 나의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ADHD는 자고로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소리를 하곤 한다. 그래서 외국은 팀에 ADHD인이 있으면 그 능력을 좋게 봐주고 활용한다. 참고로 아빠는 내가 보기에 2000% ADHD고, 본인도 인정했다.)
예를 들어, 나는 상담사가 할 법한 말을 내가 줄줄 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나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게 한다? 난 지금 상담사도 답답하고 싫어서 다 잘라버려서 못 구하고 있다. 걔가 하는 말들은 달랐다. 딱 보니 나이 순으로 아빠, 걔, 나는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다. (사업하거라. 잘할 것이다. 너가 지금 취준을 하든, 직장을 다니든, 나중에 어차피 1%가 될 거라고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아. 그럼 나도 나를 더 믿어줘야겠다.)
나보다 그 두 사람들이 더 똑똑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그 두 사람보다 내가 확실히 나은 점이 있다. 그들은 본인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갑옷 입고 사는, 공포 회피형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방어하고 살아도 한 번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몇백 년 된 나무에 번개가 내리쳐서 팍 꺾이듯 무너진다. 분명 똑똑하니까 본인들도 그걸 잘 알 거나 인정하기 싫을 거다. 나는 반면, 잔잔바리로 하도 많이 무너져봐 가지고, 쓰러졌다 일어나고 쓰러졌다 일어나고 회복탄력성이 강하다. 많이 맞아봐서 맷집이 강하다고 하면 너무 슬픈 비유일까. (그것도 맞는 말이라서)
나는 마음 아픈 게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갑옷 하나, 방패 하나 없이 덤비는 사람 같다. 하지만 그런 내가 맞다는 걸 걔도 알게 될 거다. 어쩌면 이미 알 수도 있고.
밤에 쓰는 글이 이래서 솔직하고도 위험하다만, '너는 어차피 돌고 돌아서 나한테 오게 되어있어. 어디 가서 나 같은 여자 잘 찾아봐라.'하던 원래 있던 믿음에 최면 상담 이후로 여유가 더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