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새롭게 가르치게 된 학생이 철학을 좋아한다고 하여 찾아보게 되었다.
*출처: 생각이 많은 10대를 위한 철학 사전, 황진규 글, 나무생각
p34 "네가 꿈꾸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은 현실적이지 않아!" 이런 사람들은 현실적인 걸까요? 그들이야말로 현실적이지 못하죠. 반쪽짜리 현실을 볼 뿐이니까요. 그들은 '받아들여야 할 현실(학교, 학원, 입시)을 볼 뿐, '극복해야 할 현실(영상 공부, 편입)'은 보지 못하고 있어요.
10년 전엔, 내게 사람들은 실용음악과는 꿈, 망상과 같은 소리라고 아우성을 쳤다. 친구를 제외하고 어른들은 다 그랬다. 지금 내가 세계적인 가수가 될 거라 해도 또 몇몇은 그때랑 비슷하게 반응한다. 나이 어릴 때는 어리니까 그런 소리 한다 그러고, 나이 먹으니까 나이 먹었는데도 아직도 꿈만 꾸냐고 한다.
이런 배경이, 내가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다. 나는 다른 어른이 될 거다. 받아들여야 할 현실과 극복해야 할 현실을 다 볼 수 있도록 도와줄 거다.
p119 변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될 때 해야 할 반성은 자신의 '인내 없음'이 아니에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대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어야 해요. 우리는 모두 즐겁고 좋아하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추구하게 되니까 말이에요.
무대 서고 싶다면서 왜 이렇게 연습을 안 할까 생각했다. 강릉 무대처럼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있으면 노래를 부르지만, 공연 일정이 전혀 없으면 일상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구가 안 든다. 찾아보니, 지난 6개월 동안 약 470편의 글을 올렸는데, 이건 특별히 내가 끈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거우니 뇌를 거치지 않고 글을 줄줄 쓰고 있었다. 노래 연습을 안 하게 되는 건, 그만큼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혼자 노래 부르는 행위는 재미없어서다. 공연이 없으면 연습을 안 하는데 공연이 안 잡힌다고 슬퍼하기에 앞서, 왜 혼자 노래 부르는 건 재미가 없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했다.
p152 "나의 욕망은 정말 내 것일까요?" 이 질문에 라캉은 이렇게 답해 줄 거예요. "자네가 가진 욕망, 그건 타자의 욕망이라네."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다. 그건 나의 욕망일까. 아니, 나는 사실 당분간 무대 안 서도 되니까 세계 여러 나라 돌아다니고 싶다. 아니, 사실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랑 매일 수다 떨고 싶다. 영혼의 연결을 느끼고 싶다.
어쩌면 나도 '세계적인 가수', '세계 여행'이라는 욕망이 주입되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진짜 욕망은 '그런 걸 꿈꾸는 게 맞나' 싶기 때문이다. 글로벌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면 대다수가 응원해 주지만, 진짜 욕망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거라는 믿음이 거의 없기에 잘 말하지도 않는다.
'연애하고 싶다'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 말한다. 나도 그랬다. 내 연애가 그동안 다 한두 달 실패로 끝난 이유는 사실상 연애를 욕망으로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저냥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시고 영화 보고 데이트메이트에 늘 관심이 없었다. (여자인 친구조차도 그렇다. 소울 메이트 같은 끈끈한 연결만 성공해왔다.) 20대 초중반 '연애하고 싶다'라고 느낀 건 다 주입된 욕망이었다. 심지어 어제 모임 가서도 내가 남자친구 없다 하니 왜 없냐며 아깝다고 막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역시 한국이구나 싶었다. (그 가벼움과 무례함을 참을 수 없다.)
한국은 특히나 이 '주입된 욕망'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입시에, 취직에, 사람 줄 세우기에 특화되어있는 나라다. '내 욕망은 정말 내 것일까'라는 질문은, 꼭 한 번쯤 해봐야 한다. 결혼이 하고 싶다면, 내가 지금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어도 결혼이 하고 싶은지,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10억이 있어도 가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여담으로 나는, 어느 멋진 곳이라도 결혼해서 같이 다니고 싶고, 당장 10억이 있다면 석사 한 번 더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