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욱 지음 / 마음산책
누군가 나에게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할까. 연습을 효율적으로 할 줄 아는 능력도 재능이고, 선생님 말을 잘 알아듣는 것도 재능이다. 작가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p20 열정에 취하지 않는 것이 재능. 고통을 피하지 않는 것이 재능. 창조의 본질이 반복을 요하는 노동에 있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재능. 네게 재능이 있느냐고?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성실성이야말로 최고의 재능.
p31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면 나의 상상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세상이 절망적이라면 내가 절망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중요한 건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최면 상담을 통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설렘, 사랑, 따뜻함과 기쁨을 끌어안았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전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절망적이었을까. 작가의 말처럼, 절망을 상상해서 그렇다. 누군가 내 음악을 소름 끼쳐하는 상상,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내가 완전히 잊힌 상상, 그런 게 자꾸 떠올랐다. 이젠 그랬던 게 옛날 같다.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보이는 건, 이렇게나 한 순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상상력이 좋다. 꿈도 굉장히 생생하게 꾼다. 남들보다 감각이 열려있어서 그렇다. 그 능력을 앞으로 더 행복하게 쓸 거다.
p108 창의성이 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방해하지 마시오' 팻말을 걸어둔 방 안에 있지 않다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창의성은 독백이 아닌 대화에서 나온다. 무의미해 보이는 잡담에서. 이질적인 잡담들이 뒤섞이는 나른하게 달아오른 공기 속에서.
종종 영국 오빠와 나눈 카톡 대화를 브런치 글에 첨부하여 공유한다. 그 이유가 있다. 그런 별 거 아닌 카톡 잡담 속에서 글이 탄생한다는 걸 통해, 사람들이 글쓰기를 더 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때론 말하면서도 '이거 브런치 감이네'라고도 한다.
p119 달 위를 걷는 경험의 철학적 의미를 시적으로 웅변한 것은 우주인들의 말이 아닌 그들의 삶이었다. 달에 다녀온 뒤 어떤 이는 화가가 되었고, (중략)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이도 있다. 달에서 무사히 돌아온 그들이지만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비록 중간에 한국에 돌아왔어도 영국 석사 졸업을 무사히 한 나는 이전의 삶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책 읽고 논문 쓰며 지식을 쌓으러 간 것이 아니라, 음악을 하러 간 것이었다. 내가 뭘 경험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가 노래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영국에서 원체 기차를 많이 타고 돌아다녀봐서, 한국 돌아와서 공연을 서울에서만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서울 밖인 여수와 강릉에서 노래했다. 공연, 책, 앨범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나조차도 예측할 수 없다.
p202 산문은 내 속옷 빨래가 널린 뒷마당에 독자를 들이는 일이 아니었다. 산문도 아름답고 복잡한 미궁을 짓고 거기 초대하는 일일 수 있었다.
분명 6개월 뒤, 1년 뒤에 내가 쓴 글을 봤을 때, 부끄러운 글들도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생각이 참 끊이지 않고, 나의 내면에는 다채로운 향과 쓰레기가 뒤섞여 있다.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예쁜 길이 어디 있나. 그런 건 유명한 관광지 엽서에나 존재한다. 복잡하든, 지저분하든, 처절하든, 아름답든, 경이롭든 나의 내면세계는 그 있는 그대로 독자들을 초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