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구직 이야기 (4) 현실적으로

by 이가연

바스 대학교에도 지원서를 냈다. 바스가 런던에서 멀긴 하지만, 런던에서의 거리는 이제 거의 중요하지 않다. 도시 분위기가 중요하다. 사우스햄튼은 도시 자체에 볼 게 없기 때문에 런던을 자주 가야만 했을 뿐이다. 런던은 너무 자주 가서, 이젠 다른 도시들이 더 궁금하기도 하다. 바스에 살게 되면, 영국 서쪽 지역을 많이 가볼 수 있게 된다. 카디프 쪽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계속 이렇게 런던 히스로 공항 통해서 여행으로 가게 되면, 앞으로도 멀고 귀찮아서 갈 일이 없을 거다.


12시부터 6시까지였던 지원서도 너무 하고 싶다. 사실 8시 반은, 학교 코앞에 살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있을까 싶다. 또한 정해진 풀타임 근무가 주 29시간이어도, 21-29시간 안에서 협의 가능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주 21시간 일해서는 생활비 충당이 어렵겠지만, 그렇게 조정 가능한 것이 신기했다. 한국은 죄다 그냥 9시부터 6시까지이지, 구체적으로 협의 가능이라고 쓰여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냐는 질문에, '일단 내가 ADHD가 있고요~'부터 시작해서, 시각 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 경험, 지금 대안 학교에서 봉사 경험 등을 썼다. 이 '일단 내가 ADHD가 있어서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요' 파트가 너무 좋다.


봉사할 때나 일을 할 때나 '나는 진짜 최대가 3시간이구나' 싶었던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 실제 근무는 3시간, 점심시간 포함 4시간이었던 일주일에 한 번 우쿨렐레 가르치던 일도 있었는데, 그때도 기절하는 줄 알았다. 학원에서 3시간 연속으로 레슨 해본 적도 있는데, 역시 4시간은 못할 거 같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3시간 동안 내내 떠들며 가르치는 일이다. 3시간을 핸드폰도 못 보고, 다른 생각도 못하고 풀 집중해야 한다. 어느 직장인이 일하는 시간 내내 집중이 필요한가.


병원에서 들었던 말도 떠오른다. 내가 한국에서 확 더 스트레스 받는 이유는, 모국어는 피부로 와닿아서 감각 과부하가 오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그 미묘한 분위기 감지가 안 되기 때문이라 하셨다. 한국어는 '방금 저 사람 나한테 뭔가 이상하게 불친절했어!'하고 감정 조절 장치가 쉽게 삐요삐요한다. 영어는 그렇지 않다. 영국 살면서 한 번도 인종 차별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내가 못 알아차린 거다. 없었을 리가 없다.


영어고 일본어고 내가 안 들을 거라고 생각하면 주위 사람들 말이 안 들린다.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감각 차단이 가능하다. (다만, 사방에서 중국말만 하고 있으면 시끄러워서 감각 과부하였다...)


그래도 집에서 지원금을 달에 50만 원이라도 받아서, 주 21시간 일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되는데 어디든 가자!'는 비현실적이다. 만일 그렇게 붙어서 비자 준비한다고 치면, 나는 그 직장을 확실히 다닐 자신이 있어야 된다. 비자 신청하는데 드는 돈만 수백 만원이다.


대학교 선택할 때와 똑같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때 나는 교육 과정을 중요시했고, 실제로 소튼은 내가 좋아하는 과목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도 내가 ADHD라는 사실만 몰랐을 뿐이지, 내 성향을 잘 알았던 거다. 싫어하는 과목 죽어도 안 하니까...


지금 내가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건, 근무 시간이다. 소튼만 아니면 어느 도시든 상관이 없다. '그 노잼 도시도 살았는데 어딜 못 살겠냐' 심리가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여부는 어차피 뽑는 쪽에서 판단할 일이다. 나의 약점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나만 알기 때문에, 내가 제일 고려해 줘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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