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 프리라이팅
영국 가면 학교 캠퍼스부터 가고 싶어서 미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미 런던 호텔부터 잡아뒀다. 빨라야 15일에 갈 수 있다. 어차피 그 주에 학교 교수님이랑 만나기로 했다. 진짜 진짜 진짜 시내는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 최면에서 봤던 펍이 가고싶을 거 같다.
이 정도면 '사별'급 핸디캡인 거 같다. 나와 다음 연애할 사람이 보면, 이건 12년 장기 연애 급이다. 브런치까지 볼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앨범들만 봐도 그러하다. 누가 봐도 사연 깊은 노래들이다. 1집 앨범 소개를 생각하면, 정말 앞으로 10년 이내로 결혼을 못 하는 거 아니냐 싶었다. 입장을 바꿔서, 내 남편이 5년 전에 어떤 여자를 위하여 앨범 하나를 냈다고 생각하면 용납이 안 되지 않겠나. 10년 전이면 이해 가능하다. 그래서 그렇다. 이 얘기 전에 했었나. 이젠 무슨 얘기를 글에 썼고 안 썼는지 잘 모르겠다. 워낙 평소에 길을 걸으면서 '이 얘기 써야지'하고 생각하며 다니는데 안 쓰는 게 많다.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가 총 600일이라고 계산했을 때, 하루에 최소 3번을 걔 때문에 타로 봤으니 최소 1800번이다. 거기다가 특정 시기에는 하루에 10번씩 봤으니 더하면 최소 2천 번은 된다. 쌍노무새끼. 진짜 욕해도 된다. 그냥 짝사랑으로는 어느 누가 타로를 2천 번씩 보겠나. 밥 한 번 같이 안 먹어본, 대화 한 번 제대로 안 나눠본 사이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그런 관계성을 형성했던 거 자체가 쌍노무새끼 소리가 나온다. 돈 쓴 적도 많은데 그거까지 생각하면 한숨 나오니 넘어가겠다.
당연하지만 타로에 의미는 못 둔다. 절대 못 맞춘다. 그냥 내 마음을 위해서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카드 뒤집을 뿐이다. 근래 들어서는 '슬픔' 키워드가 자주 뜨긴 했다. 제발 좀 슬퍼했으면 좋겠다. 나는 몇 번이나 울었을까.
몇 달 전에는 묵주기도도 했다. 천주교인 영국 오빠가 알려줬다. 내가 묵주를 사서 기도를 하다니. 내가. 근데 오빠가 54일, 55일이면 다 응답 받았다고해서 열심히 기도했다. 왜냐, 그걸 뒷받침할 소름 돋는 시기적 우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56일 날이 생일이고, 55일이 강릉 무대였다. 강릉이든 생일이든 언제 연락 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강릉 공연을 유튜브든 브런치든 계속 언급해왔고, 생일은 네이버 검색해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도 응답 때문에 더더욱 생일 하루종일 연락 오길 기다렸다. 오빠는 이제 생일 이후로 아무런 기대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기도에서 걔가 정녕 아니면 내가 확. 실. 하. 게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는디. 그럼 기도 응답을 못 받은 거다.
기도하다가 서럽게 운 적이 몇 번 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서러웠다. 올해 들어선 그렇게 운 적이 없는데, 중얼중얼 기도하다보니 그랬다. 혼자 방에 앉아가지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겁나게 고백을 했다. 뜨뜻한 바닷물이 갑자기 연상 된다. 물고기쉐키.
기도 응답이 늦는 것도 다 하늘의 뜻이다, 다 아직은 타이밍이 아닌 거다 했는데 이제는 오빠보다 내가 더 홀리해진 느낌이다. 그런데 기도 덕분인지 근래 타로를 볼 때나, 가만히 느낄 때나 더 영적으로 열린 느낌이다. 요즘 타로 유튜브를 열심히 찍어서 그런가.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진심으로 기도 응답이 늦는 거라면, 하늘의 뜻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응답이 내려졌어야하는 시기 이후에 최면을 받았고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상처 받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히 있다가도 "꺼져" 같은 말 들었던 몇몇 말 떠올라서 확 가슴 부여잡는 걸 상대방이 다 받아내야하는데 그건 서로 고역이다. 나도 내 의지로 생각 나는 게 아니고, 상대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어떡하나.
정신 상태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든다. 설령 걔가 결혼한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더라도, '그렇구나. 너가 행복을 찾았다면 다행이지.'할 수 있다. 물론 그 순간은 기절하긴 하겠지만, 며칠이면 그렇게 마무리 짓는 단계에 도달할 자신이 있다. 이건 8월 초만 해도 안 됐을 거 같은데, 아무튼간에 신기하다.
그동안 지내면서 몸에서 사리 나올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덕분에 내적인 성숙도가 1년 안에 7년치가 오르지 않았을까. 다 감사하고 싶다. 걔 때문에 작년 하반기에 정신 건강이 폭망 폭망 몸을 던지자 했던 거고 그러니 너무 가기 싫어도 병원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ADHD를 발견했다. 올해의 발견, ADHD, 내 인생을 바꿨다.
'저 사람도 ADHD인가보지'하는 생각은 상당히 많은 이해심을 갖게 해준다. 물론 대표적인 예시가 걔다. 90%쯤 확신하고 있다. 다만 하나 걸리는 게, 걔가 노트 필기를 엄청나게 깔끔하게 한 모습을 봤다. ADHD가 그게 가능한가... 하긴 반대로 아주 계획적이고 강박적일 정도로 꼼꼼한 걸로 나타날 수도 있다. 내 기억으론, 뭔 노트가 손글씨 폰트로 인쇄한 것처럼 예뻤다. 우와 하고 봤는데, 내가 칭찬하니까 걔도 신이 나서 아주 더 보여준 기억이 있다. 그래서 속으로 '하여간 남자들 칭찬해 주면 좋아한다더니' 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만날 줄은 몰랐다.
나 정말 뒤돌아서 20미터쯤 거리에서 집에 가지를 못하고 한참을 그쪽 바라보다가 이내 돌아섰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니까. 다 진짜 이유가 있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