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3 프리라이팅
앵그리버드 표정이 똑같다. 둘 다 표정과 옷차림은 비슷하다. 나는 웃상이고 걔는 앵그리버드상이다. 문득 "니는 웃상이 아니라 그냥 쪼개는 거고"해서 웃었던 생각난다. (이런 거 생각날 때면 도대체 얼마나 다 기억하나 싶다.) 얼굴은.. 내가 저걸 닮았다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린다. 역시 순정만화다.
내가 걔가 팔 한 짝이 없어졌어도 좋다고 하는 이유는, 팔 두 개 다리 두 개라서 좋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하는 말을 보면, 내가 말하고도 심장 철렁하다.) 걔는 본인이 별로 안 좋아하던 모습인데 나는 그래서 좋았다. 본인 목소리에 콤플렉스 있다고 했을 때, 펄쩍 뛴 이유도 그땐 100% 친구라고 생각했음에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목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투리 쓰는 것도 싫어하고 바꾸고 싶어 했는데, 지금 사투리가 한 몫했다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대로, 가진대로 그냥 살면 된다. 어차피 바꾸기 어려울뿐더러, 본인은 그런 자기 모습이 싫을 수 있어도, 남은 좋아해 줄 수 있다.
진지한 사람 누가 좋아하냐고도 했는데 그 말도 되게 맴돌았다. 그렇게 웃을 땐 웃고, 진지할 땐 진지하고 휙휙 바뀌면서 대화가 맞는 사람이 있는 줄 아나. 예전 상담사는 내가 기대하는 대화의 수준이 높다고 했다. 걔는 그 수준이 맞았던 거다. 보통 20대는 자기 감정과 생각을 그렇게 깊이 있게 들여다본 적도 없고 할 줄 모른다. 내가 그런 또래 대부분의 가벼운 사람들을 얼마나 싫어하는데. 이제는 그 말을 돌이켜 생각하면, 얘도 만만치 않게 세상에 상처받고 살았을 것이 짐작되어 안타깝다. 나보다 1년 반을 더 오래 살았으니, 그만큼 더 그리 살아온 게 아닌가. 나를 보면 한 해 한 해 너무도 다르게 살아왔다. 일 년이 아니라 분기마다 내가 변한 느낌이다. 걔도 그럴 것이다.
종종 그 두 달로, 2년이 아니라 앞으로 몇 년을 살게 될까 싶어서 한숨 나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젠 혼자 수행하는 수녀님이라 생각하고 내려놨다. 혹시 아니라고, 세상에 남자가 반이라고 잔소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매거진에 담긴 글 100개 읽어야 된다. 이젠 그 방해도 수행의 일부라 생각할 거다. 이제 정말 100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