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중에 이것이 있었다. 이 말은 정확한 통문장으로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뭐 말만 이렇게 하고 속은 아닐까봐"하고 비아냥조로 얘기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봤다. 내 입에서 "내가 말만 이렇게 하고 아닐까봐" 같은 말이 나왔다는 거 자체가, 말만 이렇게 하는 게 맞다. 뭐 이런 심리학 책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간단한 힌트가 다 있나. 예전에 심리학 책에서 읽기도 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하면 이상한 사람 맞는 거고, "돈 없어서 이러는 건 아닌데" 돈 없어서 이러는 거 맞다. 내가 어디 가서 "저 이상한 사람 아닌데"로 시작하며 말해본 적이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당연하기에 굳이 앞에 붙일 필요가 없다.
너 딱 걸렸어. 위악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애초에 '너 싫다. 연락하지 마라.'라는 말을 왜 하는지 설명하려고 50분 동안 전화하는 사람이 어딨나. 다시는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1분 이상 전화할 수가 없다. 상대방 생각은 안 하고 엄청 뭐라만 하고 끊겠지. 내가 우는 걸 다 기다려줬다. 물론 우는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처량하긴 하였으나 (어우 쌍노무새끼. 니도 나도 서로 타지인데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죽여놓지.) 이미 나한테 할 말 못할 말 다 한 마당에 뭐 그런 내가 손절을 납득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배려를 하나.
그래서 내가 핸드폰 복구를 하고 싶어했다. '음성녹음'만 복구하는데도 최소 20만원이 들기에 포기했다. 된다면 그 마지막 통화를 꼭 좀 다시 듣고 싶었다. '진짜 나를 싫어했던 게 맞는가'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이젠 확인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동안은 그냥 불안이었다.
굳이 그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사람의 기운을 굉장히 민감하게 느낀다. 그 예시로, 예전에 구남친과 헤어진지 사흘 뒤였나 내가 전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괜찮더니 이내 싫어하는 그 느낌을 캐치하고는 바로 정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동안 '연애는 헤어지면 3일 컷이다' 하고 얘기하곤 했다. 이 관계가 안 된다는 걸 확실히 알면,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랬기에, 나의 그 데이터가 한 몫한다.
그런데 내가 포기하고 돌아선 이유는, 상대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의지가 너무 확고한 걸 느꼈기 때문이다.
말이 너무 날서있어서 '상처 받은 사건'으로 착각했다. 걔도 전화 끊고 후련한 게 아니라 심히 마음이 안 좋았을 거다. 지도 울고 싶을 지경이었을 거다. 그렇게 방어기제로 똘똘 뭉친 사람은, 그래도 마음 공부 좀 한 내가... 들여다봐줘야지 않겠나. 작년 하반기부터 영국 오빠랑 해오던 말이긴 하나, 최면 이후로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마지막까지 느꼈던 게 사랑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