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 프리라이팅
비행기는 주식이다. 샀으면 보질 말아야 한다. 10월, 11월, 12월 다 86만원에 왕복 직항 비행기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110만원도 싸게 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내년 2월 비행기도 분명 그거보다 더 싸게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 비수기이기 때문이다.
9월 비행기를 끊을 때만해도, 9월 한국은 여전히 매우 더울 거라 생각했다. 작년 추석 때도 35도였다. 그래서 더위에서 벗어나 영국 가서 좋은 날씨를 만끽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정도까지 덥지 않다. 이제 좀 살만한 날씨다. 선풍기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운 그런 날씨가 아니다. 반면, 영국은 지금 좀 추워보인다. 9월 말에 영국 처음 도착했을 때 사진 보니까 가디건 입고 있더만. 제법 두꺼운 털자켓을 가져가게 생겼다. 이번에 기내용 캐리어는 글렀다.
원래 영국 가기 직전이 제일 고비다. 괜히 자존심 부려서 호텔을 본머스에 잡았나 싶다. 본머스 머무르면서도 소튼만 계속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어차피 기차로 30분 거리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들이 내 마음에 피어나게된 본고장에 얼른 가고 싶다. (내 노래 아닌 엔플라잉 노래 듣고 있다.)
영국 가고 싶은 충동은 괜찮다. 내가 살았던 곳이니까. 창원 가고 싶은 충동은 어이가 없어서 팔짝 뛴다. 그렇긴 한데, 왜 또 영국 히스로 공항 도착하면 바로 가고 싶은 게 소튼인가. 런던이고 본머스고 다 자존심 같다. 내 안엔 혼자 감성 팔이 하기 매우 싫어하는 나와, 그 모습으로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푹 잠겨버리는 내가 있다.
누군가를 품고 4번 비행기 타는 마음을 아십니까. 작년 8월은 99.9% 그 마음 하나 때문이었고, 이후에도 그 마음은 조금도 변함 없이 여전합니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인 줄 알았는데, 아니요. 의식 차원에서 받은 건 상처였지만, 무의식에 남은 건 사랑이라, 그리움에 지푸라기라도 쥐어보려고 가던 것이었어요.
엄마가 왜 얼굴이 싱글벙글하냐고 무슨 좋은 일 있냐고 했는데, 그냥 걔 생각했어요. 진짜 평범한 짝사랑처럼 웃을 때가 많은데, 차이점은 울컥하고 팍 치고 들어올 때는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저항하지 않을래. 5월에 느꼈던 것처럼 빈 껍데기만 남은 도시 같겠지만, 걔한테 칵테일 쏟았던 펍까지 똑같이 다시 가려고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곁에 있어준 친구도 함께 하니까 난 괜찮을 거야.
상사병은 약도 없는데, 영국 가면 좀 나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