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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그 나이엔 차은우만 찾는다고

0905 프리라이팅

by 이가연

오늘은 이 분이 일주일 넘게 연락이 두절되신 관계로 또 헌정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이 분과의 대화는 언제든지 브런치에 인용해도 된다는 사전 허락을 얻었다. 매우 좋아해 주신다.


며칠 연락이 안 되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은 친구는 처음이다. 그냥 나는 할 말을 다 남겨놓는다. 매번 바빠지기 전에 언제든지 편하게 써두라는 말은, 마치 엄마가 나가기 전에 냉장고에 먹을 거 있으니 잘 챙겨 먹고 있으라는 것과 똑같다. 먹을 거 있단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챙겨 먹는 것처럼, 오빠도 똑같이 그러고 있다. 그래서 양엄마다. 내가 결혼하면 피아노 연주해 주기로 했다.


아무튼 이 영국 오빠는 작년 여름부터 이 이야기를 알게 되어 나의 정신 건강이 바닥을 길 때도, 좋아졌을 때도 늘 변함없이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여, 간접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참 즐거웠다.


채팅방에 검색해서 지난 대화 내용을 찾아보았다. 먼저 경상도를 검색해 봤다. '경상도 남자들이 한 번 무너지면 한없이 무너진다'라, 그럴 거 같다. 눈에 보인다. 마음 되게 여린 거 내가 다 봤다. 원래 그렇게 여린 사람들이 더 갑옷을 껴입고 산다. 안 들키고 싶어서.


'내 눈엔 걔가'로 시작하는 문장을 끝마치지 않겠다. 이미 이제 걔를 떠올리면 그 배우님도 같이 짬뽕되어서 떠오른다. 기억 미화에 얼굴 미화까지 대~단하다. 상태가 심각하다.


같은 경상도로서 너무 부끄럽다는 말에 계속 웃었다. 내가 그 자리에 없는데도, 오빠랑 오빠 친구들이 어떤 말을 했을지 상상이 되어서 웃겼다. 저 당시 카톡 하면서 속이 후련해졌었다.


나도 이젠 내가 멋모르고 티끌 만의 진심도 없었음에도 미쳐 날뛰던 짝사랑, 연애만 생각하면, 그때가 전생 아닌가 싶다. 까마득하다. 내 인생에 너무 큰 변화가 나타났다. 내가 어떤 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어떤 남자를 만날 수 있는지 너무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 작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걸 했다. 그걸 확실히 모르고 무분별하게 사람을 다 좋아하고 다니던 때는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영국 오빠,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국인 증오가 아니라 인간 증오에 빠졌을 것이다.


"You love him more than you think."라는 말을 새삼 들여다보게 된다. 날이 갈수록 마음이 더 깊어지는 건지, 아니면 나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크기를 실감하는 건지, 둘 다 인지 모르겠다. 나도 내 마음을 다 모르겠는 것이 당연하다. 상대가 오랜 시간 부재한데 그럼에도 변함없는 내 마음을 어찌 온전히 들여다보는 게 쉽겠나.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방어하고 부정하고 회피하는 게 편할 거다.


그래도 계속 들여다볼 거다. 그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용기 있는 일이다. 걔랑 나랑 차이점이 있다면 이것일 거다. 자기표현을 잘한다는 건, 자신을 마주하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나는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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