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가느라 수업을 못 하기에, 오늘은 봉사 가는 날이 아닌데 보강을 잡았다. 그런데, 11시 수업인데 학생이 11시에 이제 일어났다고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저런.
그랬더니 거기 학교 선생님께서 컴퓨터실에 있던 아이 한 명을 끌어다 수업하라고 하셨다. 뭘.. 하면 되죠?
영어 할래? ...
노래할래? 그건 좀...
피아노 칠래?
피아노 당첨. 이제 막 메이저, 마이너 코드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얼른 피아노 기초 반주를 할 수 있는 악보들을 뽑아왔다. 이래서 네이버 MYBOX 같은 드라이브에 언제든지 수업 자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업로드해둬야 한다.
이 학교 봉사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중고등학교 남학생과 1대 1로 수업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학생들이 착해서 그런지 여자 애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애들 대상으로 수업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애들은 처음 만나는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자기 얘기를 알아서 조잘조잘한다. 그럼 내가 대화가 너무 쉽다. 처음 만난 어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호구조사하기 바쁜데, 지금까지 질문 폭격하는 애는 못 만나봤다. 만나도 귀여울 거다. 애니까. 특히 초등학생들은, 부모가 알면 '그런 얘길 선생님한테 왜 하냐'싶을 이야기도 다 한다.
성인 ADHD란 그 상태 그대로 어른이 된 셈이다. 왜 어린이 시절 그대로 TMI 남발하고 자기 오픈 안 하냐. 도대체 어쩌다 세상은 이런 어린이들을 그런 어른이 되게 만들었을까. 자기 얘기 많이 하면 약점 잡히는 세상인가. 그렇게는 들었는데, 나는 직장 생활 경험이 없고 앞으로도 생각이 없어서 모르겠다. 알고 싶지가 않다.
오늘 수업하게 될 줄 생각도 못한 학생과 만나며, 이 간단한 걸 왜 어른들은 못하나 싶었다. 내가 ADHD인 게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이 좀 어린 시절 그대로 ADHD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ADHD의 장점인 호기심, 일단 달려드는 도전 정신, 열정 이런 거 다 그냥 어린 시절 그대로만 유지됐으면 되는 일이다. 물 보면 일단 뛰어드는 애처럼, 악기나 신기한 걸 보면 일단 만져보는 애처럼.
수업은 정말 재밌게 끝났다. 아무 때나 노래, 피아노,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장점은 참 좋은 거 같다. 가르칠 수 있는 분야가 많고, 성인보다 아이들을 훨씬 쉽게 대하고, 나의 ADHD력은 오늘도 빛을 발했다.
나는 이 아이들이 이대로 자라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