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친구에게 내가 ADHD 얘기를 할 때, 혹시 스스로 의심이 된 적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실은 자폐 쪽으로 의심이 되었다고 했다. 자폐와 ADHD 자체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친구도 그동안 살면서 자폐, ADHD와 같은 신경 다양인을 접할 일이 계속 있었다고 했다. 영국 오빠는 그동안 많이 언급했으니 생략한다. 이 오빠는 나를 제외하고도 사방이 ADHD인인 것으로 보인다.
역시 그들이 단순히 '영국인'이어서 대화가 잘 통했던 것이 아니다. 신경 다양인을 접해본 경험이다. 두 사람 모두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대해봤다. 그게 핵심이다. 그러니 내가 ADHD인 걸 몰랐던 작년에도, 내가 뭘 해도 '그러려니'가 되었다. 이미 그런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에, 지극히 평범해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레드 플레그가, 나를 신기하게 보는 것이다. 그동안 첫 만남에서 나를 신기하게 본 사람 중에 크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6개 국어를 한다는 등의 능력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나의 성격, 성향, 말하는 투와 같은 특성이 마치 '이런 사람 처음'이면 안 된다. 신기하게 봐주는 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 바로 돌변하는 모습을 봤다.
이 깨달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가 한국인이면 극혐하고 영국인이면 열려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국인 중에 나쁜 사람 많은 거 알아도, 한국인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압도적으로 크고 외국인은 상처 받은 적이 별로 없어서 도무지 뒤집을 수가 없다. 외국인은 기껏해야 '내가 메일을 몇 번 보내도 씹었다' 정도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영국에 살면서도 수많은 거기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시도했지만 남은 사람은 딱 두 명의 친구와 한 명의 교수다. 그리고 그 교수는... 확신의 ADHD다. 온통 백인 영국인만 가득한 음악학부에 혼자 홍콩인 교수다. 대단한 분이다. 연구실은 아주 정신 없고 항상 뭔가 정신 없어 보이신다. 결정적으로, 아빠의 여자 버전 같다. ADHD다.
그러니 내가 설령 영국에 가서 다시 살게 되더라도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영국은 워낙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이 섞여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국인보다는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데 익숙하다. 게다가 미국인과 다른 영국인의 특성도 있다. 한국인처럼 대놓고 상처 주는 일이 덜하다. 영국인들은 굉장히 돌려돌려 말과 행동을 하고, 그걸 내가 못 알아들었으면 끝이다. 영국 튜터와고도 이 문제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돌려서 말하는 사람을 제일 복수하는 게, 아예 못 알아듣는 거 아닐까." 하셔서 이대로 살기로 했다. 눈치가 '아예' 없는 사람은 사회 생활하기 편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라도 ADHD 장점으로 이용해야지.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은, 그게 친구건 애인이건 고용주건, 신경 다양인을 이미 많이 접해본 사람이거나 신경 다양인 본인, 그렇게만 좁혀질 거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할수록 상처만 받아서 사회공포증 진단까지 나오니 그렇게 딱 정해두는 편이 좋은 듯 싶다. 조금 슬프지만, 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