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에너지가 높을 때

by 이가연

에너지가 높은 상태일 때, 부정적인 생각도 같이 끌고올 수 있다는 영상을 접했다. 맞는 말이다. 8월 생일 이후로 운기가 좋아졌다는 걸 느꼈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이 사라졌고, 후련함을 느꼈다. 아직도 신기하다.


하지만 영국에 마구 지원서를 제출하더니, 이거 에너지가 상당히 불안정하고 파도 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그냥 내 에너지가 높아서였다.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 전에 당연히 일어나는 증상이다. 좋은 결과는 뭐라도 많이 해놨어야 온다. 마음이 평화롭고 잠잠한 상태에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하다못해, 복권 당첨도 복권을 샀어야 당첨되는 것이 아닌가.


변화를 꿈꾸는 사람의 마음은 안정적일 수가 없다. 안정적인 기분 상태는 내겐 이상적이지 못하다. 워낙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이다보니, 본능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찾고 요동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마치 취미로 스카이다이빙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위험하게 저런 걸 왜 하냐'하고, 어떤 사람은 '독특하네'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생각만 하고 실행을 못하는데 멋지다'할 것이다.


내 안에도 그런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사는 거 같다. '니가 지금 돈 벌어야할 나이 아니냐.', '한국에 편하게 있으면 되지 해외 취직을 하네 박사를 하네 거 참 독특하네.', '생각이 들면 그냥 지원 버튼 누르고 있구나. 대단하다.'하는 생각이, 매 순간 왔다갔다한다.


수년간 조울증으로 오진 됐었다. 조증이 심하면 우울증도 심하게 온다고 믿었다. 우울증 시기를 겪은 뒤에, 갑자기 에너지가 확 올라가서 이것저것 막 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우울이었다가 조증이었다가 하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도전적, 열정적, 충동적으로 사는 특징이 내 ADHD 디폴트값이고, 중간중간 잠깐씩 우울증이 오는 거였다. 그러니 이제는 그럴 때마다 우울증 약만 챙겨먹으면 된다.


병원에서조차 조증 취급 되었던 이유는 이해가 간다. 우울증에서 회복되고, 이게 원래 나인데, 원래의 내가 ADHD다보니 일반 사람들이랑 달라서 조증으로 보였다.


조울증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고 그저 늘 ADHD였다고 판명난 이상, 에너지가 높은 시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게 나고, 이런 나는 장점이 아주 많은데, 우울증이 가끔씩 발목 잡았던 거다.


에너지가 높을 때에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고 그걸 계속 실행하느라 바쁘고 그속에서 좌절과 실망도 많이 겪는다. 안그래도 쉬지 않고 흘러가는 이 ADHD 두뇌가, 더욱 과로하기 때문에 두통과 가벼운 몸살 증상이 올 수도 있다. 신체화 증상이 오기 전에 쉬면 좋겠지만, 증상이 왔을 때라도 쉬면 다행이다.


어제도 오늘도 외출을 못하겠고, 내내 신체적 피로감이 든다. 하지만 집 안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래도 '지가 너무 아프면 알아서 쉬겠지'하고 나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가 높은 걸 즐기고, 아플랑말랑 하면 얼른 쉬어라. 그 오르락내리락 파도에 더욱 적응해볼까 한다.


높은 에너지가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그것으로 살아있다는 감각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느낀다. 어차피 95%의 사람들은 ADHD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니까, 주변에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든, 맞는 약이 없든, 내가 나를 계속 살아 숨쉬게 하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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