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 장드롱 글 그림 / 이재경 옮김 / 반니 출판사
절반이 그림이다. ADHD에 대해 꼭 알아야할 정보가 쉽고 재밌게 나와있어 적극 추천한다.
p18 ADHD가 있는 사람의 뇌는 ADHD가 없는 사람과 다르게 작동한다. 또한 ADHD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평생 그것을 지니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 게이가 게이로 태어났듯이..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났듯이... 내가 아무리 영국인과 결혼해도 유전적으로 한국인이듯이...
p19 전문가들은 ADHD의 유전율을 약 80%로 본다.
- 우리 집은 원래 '닮은 꼴 3대'로, 친할머니 - 아빠 - 내가 있었다. 전부 무조건 ADHD다.
p32 ADHD에 대한 오해들 : ADHD는 딱 보면 안다.
- 2015년 처음 정신과를 가서, 그동안 많은 병원에 가봤는데 진단까지 10년 걸렸다.
p45 ADHD 진단이 항상 쉽지는 않다. (중략) 다른 정신건강 질환이 ADHD 증상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ADHD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여전히 ADHD에 대해 매우 정형화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 한국은 ADHD에 대한 연구가 미국과 영국에 비해 한참 더디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 진단이 늦었다고도 볼 수 있다.
p49 ADHD 진단을 받은 후 화가 나고 울분이 일었다면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진단에 대한 감정 반응은 극단적일 수 있다. 특히 나이 들어서 진단을 받는 경우는 더 그렇다. 나도 분노를 느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게 원망스러울 수 있다.
- 아직도 내가 ADHD였다는 것만 진작 알았어도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까지는 안 들었을텐데, 그럼에도 그랬으면 내가 뭐라고 했을텐데 하는 일들이 종종 떠오른다. '장애 학생 괴롭힘이다.'라고 몇 년 전 사건들에도 받아치고 싶은 생각들이 든다.
p59 ADHD가 있는 성인은 ADHD가 없는 성인에 비해 불안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2.5배 높다. 때로 정신건강 전문가도 ADHD 증상을 범불안장애 증상과 자주 혼동한다.
- 그러니까요. 엄마 집에서 일주일에 두 번 봉사만 하고 사는데도,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고 노상 불안하고 힘든데 앞으로 어떻게 감히 돈을 벌고 살아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니까요.
p61 ADHD인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증상을 만회하기 위한 습관과 스킬을 개발하는 경향이 있다.
- 제가 진짜 능력은 많은데요.... 제가 생각해도 21살 때나 23살 때나 지금이나 동년배 대비 재능은 넘친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냥 살기가 힘들어요 살기가. 살기 힘들어서 능력 개발한 거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p62 정서조절곤란은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벗어나는 정서적 반응을 말한다. 분노감이 들면 삭이기 어려울 때가 많은가? 어떤 주제에 열정을 느끼면 지나치게 열광하는 편인가? 남들보다 쉽사리 슬픔을 느끼는가? 모두 ADHD인에게는 흔한 일이다.
- 똑같은 얘기를 계속 반복하면 나도 싫은데, 그만큼 죽을 뻔해서 계속 하게 된다. 필히 약물 치료가 들어갔어야 했던 나의 2024년이여. 극심했던 건 작년으로 끝났지만, 올해라고해서 어려움이 없던 게 아니다. 모든 감정을 크게 느낀다. 이건 예술가로서 엄청난 장점이자, 그냥 사람으로서 살기엔 매우 힘든 점이다.
p66 감정 기복이 심한데 여기에 충동성까지 가세하면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몇 번씩 맛보게 된다. 이렇게 기분이 오락가락하면 엄청 피곤하다. 대낮에 갑자기 기진맥진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ADHD 하나로도 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울증이 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관리해줘야 한다. 합쳐지면 파국이다.
p67 ADHD인 중 다수가 충동성으로 인해 애초에 의도했던 것보다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사를 공유할 수도 있다.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과잉 공유는 때로 후회로 이어진다.
- 그래서 내가 하는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공유해줘서 고맙다고 느끼는 친구들만 옆에 둘 수 있다. 공유해줘서 고맙고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말해줘야 안심하지, 안 그러면 자책과 후회가 딸려오기 쉽다.
p67 RSD (Rejection Sensitive Dysphoria)는 거절 공포증을 뜻한다. RSD가 있는 사람은 거절당했거나 비판받았다고 느끼면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다. 일부 정신건강 전문가는 이를 ADHD인이 겪는 정서조절곤란의 원인 중 하나로 본다.
- 그뿐만이 아니다. 도파민 결핍과 충동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말 거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쉬었다가 또 하고 쉬었다가 또 하고 반복이다. '한국인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말하면서도 어제고 오늘이고 다 메시지 먼저 보냈다.
p69 ADHD인은 자주 기다림에 갇힌 상태가 된다. 예를 들어 오후 3시에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에 대비하는 것이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해서 그날은 도무지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 메신저 답장을 며칠 씩 안 한 것이 나에게 얼마나 고문이었는지 사람들이 알았을 필요가 있다. 그 답장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다. 이제는 영국 오빠가 24시간 넘는 사람은 예의가 없는 거라고, 그 사람들은 화장실 안 가고 밥 안 먹냐고 딱 잘라줘서 정리됐다. 영국인 친구도 거듭 답장이 4-5일씩 걸렸고, 오빠도 '너가 다른 친구가 있었으면 이 친구랑 이렇게까지 안 지냈을 것이다'라고 말해준 뒤로 내 마음 속에서 그렇게 정리가 됐다.
p74 침대에서 나오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ADHD인에게는 더욱 힘들다.
- ADHD 얘기하면 종종 '그건 누구나 그런 거 아니냐' 소리를 들어서 화가 나곤 했다. 봉사를 아무 때나 가도 되지만, 오후 1시나 2시로 요청했다. 오후 12시는 넘어야 밖에 나갈 수가 있을 거 같다.
p78 ADHD인은 항상 에너지 넘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은 ADHD인 중 다수가 항상 피로를 느낀다는 것을 아는가?
- '그니까 체력을 키우라. 운동을 하라'는 소리를 한 번만 더 들으면 소리를 지를 계획이다... 그 장소가 어디건...
p82 ADHD인은 개인 위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ADHD 증상들은 청결 유지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머리 감을 시점을 놓치거나, 옷이 더러워진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ADHD 진단을 받기 전에는 개인 위생과 관련해서 내가 겪는 문제가 ADHD 때문일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 평생 수치심을 안겼다. 예를 들어 나는 이 닦는 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 점점 '이게 내가 쓴 책인가' 싶다. 특히 가족들이 매우 나를 힘들게 했다. 매우.
p88 화장에 대한 태도가 극과 극이다.
- 한국이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이젠 한 번만 더 내 얼굴 보고 화장 언급하는 한국인을 보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집 간다고 굳게 마음 먹고 있다. 그게 누구건...
p91 ADHD인 중 일부는 커피가 과잉행동성을 높이기 때문에 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 나는 한 번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적이 없는 28살 한국인이다.
p94 ADHD인에게 끼니를 잊는 일은 흔한 일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과하게 집중하면 다른 모든 것을 잊는다.
- 여행 가면 정말 쉽게 잊는다. 도파민 파티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3년 전부터 '배고픈가, 잘 잤는가, 아픈가' 훈련을 했다. 저 중에서 짜증 날 때 가장 흔한 원인이 밥 안 먹은 거다.
p106 주의 산만, 주의력결핍, 충동성 같은 ADHD 특성이 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진작 진단을 받았더라면, 운전 면허를 딸 시도 따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기 3번 떨어지고 포기했는데, 앞으로도 평생 딸 생각이 없다. 돌이켜 생각하면, 운전대 잡는 게 무슨 범퍼카 같고 막 '혹시라도 내가 확 박아버리면 어떡하지'하는 내 안의 충동성이 일었다. 거기서 누가 분노라고 자극했으면, 상상도 하기 싫다. 나는 운전해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이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절대 군대 갔어도 안 되는 사람이다. (찾아봤는데, 내 여건에 남자였으면 ADHD 아니었어도 공익 확정이다.)
p112 대화에 과하게 집중해서 엄청나게 긴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끊임없는 상념'에 따라 짧은 문자들을 잔뜩 보내기도 한다.
- 싫으면 싫다고 진작 말할 것이지, 내 입장에서 사람들은, 갑자기 터트려서 큰 상처를 줬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나지만 상처 받았던 기억이 너무도 많다. 다 ADHD 탓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카톡으로 장문이나 단문 여러개를 보내두지 않으니 당황했던 거다. 이건 내가 죽어다깨어나도 막을 수 없다. 영국 오빠를 알게된 이후로는 내가 더 황당해졌다. 그런 걸 다 재밌어해주고 기뻐해주는 '영어 아니고 카톡' 친구가 존재하다보니, 다른 카톡하는 사람도 좋아해줄 거라고 착각했던 거다. 나보다 10살 이상 많은 어른들을 제외하고, 영어만 안전하게 느낀다.
이 글을 쓰는 내내 화가 치밀었다.
다음 세대는... 내 다음 세대는 고통받고 살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