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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상처 기억

by 이가연

걔 생각이 떠난 자리에는, 다른 상처 기억들이 채워졌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은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그냥 불쾌하다. 그래서 깨달았다. 걔한테 상처 받은 말들이 계속 떠오르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무의식은 원했다. 의식은 '제발 좀 그만'이라고 외쳐도, 무의식은 그것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다른 기억 반복은 비교적 금방 멈춘다. 엊그제 병원 가서, "과거 상담사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자꾸 생각나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이 그건 우리가 맞는 약을 찾아서, 상담 받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면 해결되는 일이라 하셨다. 맞는 말이다. 내가 힘들어서 찾은 게 상담사들인데, 그 상담사들이 상처를 남겼으니 화가 났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힘들어서 상담이 너무 필요하게 느껴지는데, 언제 또 새로운 상담사를 찾아서 또 상처 받을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을 해야하나 싶었던 거다.

병원에서 그 말을 듣고 온 이후로부터 상담사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생각이 안 난다. 이렇게 간단했다니.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생각날 때에 걔로 얻은 깨달음이 적용될 거 같다. '그 상처, 그 말들이 생각 나는 건 내 무의식이 끌어당기기 때문이다'라고만 생각해도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진다. '나는 정말 원하지 않는데 내 의지와 다르게 자꾸 생각나!'보다 그냥 받아들이고 내려놓게 된다. 감정은 누를수록, 부정할수록 더 커진다. '내가 상처 받았구나'하면 금방 끝날 일인데, '쓸데 없는 사람 생각 계속 하고 앉아있어'하면 더 오래 걸린다.

가족은 나를 사랑한다. 상처 받은 기억들은, 그당시에 말이 잘못 나간 거다. 진짜 그러면 안 됐던 말들도 있고, 나한테는 안 맞았던 말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걔랑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사과 받을 수 없고 그런다고 낫는 수준의 상처가 아니란 점이고, 하나는 나를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은 진심인데 말만 잘못 나간 거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그들만의 특징이다.

그건 그렇고, 걔로부터 받은 상처가 생각 안 나는 것만으로도 아주 살 거 같아서 이게 다 좀 살만 하니까 드는 생각이다. 할렐루야. Dobby is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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