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 생각이 들어 눈이 번쩍 떠졌다. 나처럼 이렇게까지 지인, 친구가 한국에 없어왔는데 이제껏 안 지치고 음악해오기도 상당히 쉽지 않다.
무명 아티스트는 다 지인 빨이다. 음원이든 공연이든 홍보는 다 지인 수준에서 그친다. 그런데 난 늘 밖으로 돌아야 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땐 전단지를 만들어 학교 앞에서 천 장 이상을 돌렸고, 각종 커뮤니티에 지속적으로 게시글을 올렸고, 보도자료를 돌렸고, SNS 홍보 비용도 들여봤다. (그게 다 재밌던 건 ADHD 덕이다.)
무명인데 어찌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들어주겠나. 공연도 아는 사람이 와준 적이 정말 10% 미만이다. 무페이는 당연하고 뮤지션 대우가 없던 적도 허다하다.
만일 아는 지인은, 공연하면 그때마다 지인들이 몇 명 보러 와주고, 음원 내면 인스타에 공유해 주는 꼴을 봤다면 내가 슬프지 않았을까. 애초에 비교할 사람 자체가 없으니 이걸 이제 알고 '오... 나 그동안 꽤나 혼자만의 싸움을 잘 해왔군. 장하네.'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늘 한두 명씩 꼭 있었다. 2017-18년에는 거의 공연 때마다 팬 한 명이 계셨다. 심지어 친할아버지 발인 날에도 안 가고 공연하고 있었는데, 괜찮은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노래하다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 끝나고 챙겨주신 게 아직도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그런 고마움은 잊기 어렵다.
작년부터는 오빠가 내 모든 영상을 보며 응원해 주고, 내가 음원 내면 인스타에 공유도 해준다. 나도 사람들이 그렇게 인스타 스토리 공유해 주는 거 바라왔는데, 그렇다고 그걸 해달라고 말하는 성향은 아니어서 못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해준 걸 보고 고마웠다.
비교하는 게 당연하고, 질투 나는 게 당연하다. 저 사람은 저런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지 못한 게 실망스럽고 속상한 게 당연하다. 주변에 비교 대상이 없던 건 축복이다. 늘 비교 대상이 연예인이기만 했다. 연예인은 '언젠가 나도 그렇게 될 거야'하면 되기에 비교해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대학 실용음악과를 나왔어도, 딱 학기 수업 들을 때만 다들 연락이 되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 잘 안 됐다. 한 학기 다니고 1년 휴학, 1년 다니고 1년 휴학했던 탓도 있을 거다.
실용음악과 나와서 계속 음악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정말 1%라고 주워듣기만 했다. 그러면 그 어려운 입시 뚫고, 그렇게 열심히 학교 다니고, 전혀 상관없는 일 하며 음악은 그냥 듣기만 하는 애들을 보면서 속이 얹힌 느낌도 들었을 거다. 이 애들은 이 전공에 한 때 미쳤었던 애들이다. 몇백 대 일의 보컬 뿐만 아니라 피아노, 기타 같은 기악도 경쟁률이 100:1씩 했다.
실용음악과 나와서 잘 나가는 케이스건, 아무 상관없는 일 하는 그 흔한 케이스건, 어느 쪽이든 나에겐 있어봤자 스트레스였다. 이것도 다 우주의 뜻이 아니었나 싶다. '음악 하는 지인이 없어 으흑흑'하니까 그런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영국 오빠를 내려주셨다. 나이 차이뿐만 아니라, 클래식이라서 비교할 게 없기 때문이다.
보컬 전공하면 당연히 전공 살려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보컬 트레이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는 그런 실용음악학원 취직은 못하겠다. 적성에 안 맞는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괜찮다. 주변 사람들을 굳이 안 쳐다보고, 조언 안 받아도, 내가 알아서 내 길을 갈 거다. (어차피 사람들 다 ADHD 아니라서 나는 나만의 길을 내 속도로 개척해야 한다.)
비교할 대상이 없었기에 혼자 묵묵히 그냥 걸어올 수 있었다. 이젠 그 점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