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2 보고 싶어서

by 이가연

혹시 여기 엘리베이터 있나요?

'내가 지금 엘리베이터라 했어? 이야.. 영국 올 자격 없네.'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영국에선 lift라 한다. 엘리베이터는 미국 영어다. 나는 한국에서도 꾸준히 영국 영어 학습 중이다 )

리프트라 부르든 말든 훈훈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계단을 마주하고 훅 한숨 쉬고 흐잇차 가방을 들려는데, 어떤 남자가 자기가 들어줘도 되냐며 들어줬다. 흔히 '낯선 사람에게 가방 맡기는 거 아니다'라고 하지만 다니다 보면 나를 도와주려는 선한 사람인지 각이 나온다. 내가 훅 한숨 쉴 때부터 3초 동안 저 남자는 나에게 시선이 가있었다. 영국이 괜히 신사의 나라가 아니다... 그 shakeit만 한국인이라서 아니었지...

오늘은 방문을 나서는 호텔 공기마저도 좋았다. 거리를 딱 나서는데, 차가운 공기부터 익숙했다. 이 공기 대체 뭐지. 후각이 발달해서 그런가, 사실상 모든 감각이 발달했지만, 그 영국 공기가 있다. 아직 소튼 가지도 않았고, 런던일 뿐임에도 걔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가히 욕을 자아냈다.

먼저 St. James's Park로 향하는 튜브 안이다. 영국의 공원이 그리웠다. 늘 그렇듯, 호텔 문을 나올 때 먼저 갈 곳만 정하고 나머지는 가면서 생각한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수많은 곳 중에 끌리는 곳으로 간다.

나는 한 번도 영국에서 9월 12일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유학 시작했을 때 입은 옷차림으로 날씨를 유추했다. 나는 9월 22일에 도착했었다.

걔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옷이 이상해서 잊히지가 않았다며 꼽을 줘도 그렇게 줄 수가 없었다. 나도 그 말이 잊히지 않아서 계속 입고 다닌다... 당연하게도 지금도 같은 옷이다.. 그러게 옷을 잘 입은 걸 말해줬어야지, 지 맘에 안 드는 걸 말해줘 가지고 뇌리에 박히게 하냐.

'리사이틀 무대 때 이 원피스를 입었다.' 이런 식으로 중요한 날은 기억해도, 누구 처음 만나는데 입었던 옷을 기억하고 입고 다니는 건 웃겨 죽겠다. (아니 울고 싶어서 죽겠다.) 2023년, 24년에 이어서 25년에도 초가을엔 이 세트로 입고 다니겠지. 그러다 추워질 무렵엔 이제 매일 걔가 골랐던 청바지만 입겠지. 아이고 지겨워... 옷 찢어질 때까지 입겠다. 새로 좀 골라줘라 제발.

너무 행복한데 동시에 너무 보고 싶다. 물론 며칠 지나면 익숙해져서 나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공기가 날 힘들게 한다. 작년 8월도, 12월도, 올해 5월도, 그리고 지금도 늘 같은 마음을 품고 왔는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지기는커녕 더 무거워지나요. 사람만 같지, 마음이 같지 않아서 그렇다. 작년 8월엔 그저 '당장의 간절함' 덩어리였고, 12월엔 나아가려고 소개팅을 다녔고, 올해 들어선 점점 더 확실히 깨닫고 있는 게 있기 때문이다. 오 주여. 얘 여기 사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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